건너가다 - 박병란 이른 새벽 부음이었다 목이 말라 부엌 전구를 켠다 거실로 포개지는 표정 없는 빛과 건너편 집에서 새어나오는 말 없는 불빛 제사상에 오르는 식은 산적처럼 핏기가 없다 가기 할 뿐 오지 않는 언덕이 가깝다 오래 전부터 묻고 싶었던 말은 이제 귀퉁이가 맞게 잘 접어 뒤축 자른 짚신 사이에 끼워둔다 생은 이쪽과 저쪽에 놓인 숟가락처럼 엎어놓고 보면 한순간 무덤이 되어버리는 일 젓가락 한 벌처럼 다정한 오누이를 자처하며 넙죽넙죽 술을 건네는 일 비단 물 한 모금 마시는 것과 물 한 사발 떠놓는 일이 영영 못 보는 일이어서 밖에는 얼음이 얼고 우엉 달인 물 유독 달게 느껴지던 밤 언제 한번 다녀가라던 말은 달이 뜬 쪽으로 고개가 꺾인다 돌아올 수 없는 곳에서 돌아갈 수 없는 데까지 치우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