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신발이 남긴 긴 발자국 - 김태완
가슴 한편 아물지 않는 멍울 같은 것
헛주먹으로 무딘 가슴을 친다고
묵직한 멍울이 떨어지기야 하겠는가
오랫동안 한참을 바라보았지
치열하고 무거운 걸음을 내려놓은 성자의 침묵
고요함이 주는 느린 상처
이제 한 걸음 더 숙연한 길을 향하여
너에게 간다.
낡았다는 것은
너의 소리를 기억한다는 것이지
깊게 더 깊게 너의 안쪽을 향하여
내 슬픔을 욱여넣고 세상의 수많은 질문을
지나왔다는 것이지
지친 걸음을 붙잡고 질긴 집착은 길어지네
가슴 한편 매달려 있던
멍울 한 켤레.
*시집/ 아무 눈물이나 틀어줘/ 북인
짝짝이면 어때 - 김태완
짝, 이라는 말은 둘이라는 것
짝짝, 이라고 붙이면 다르다는 것
자세히 보니
내 눈이 짝짝이다 왼쪽과 오른쪽이 다르다
그런데 꼭 짝, 같다
몸 양쪽이 다르고 쓸모도 다르고
다르면 다른 대로 한 몸에 붙어사는 오묘함
반으로 나뉜 것들이 다시 반으로 나누어지고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홍수에 미친 불길이 길 아닌 길로 쏟아지고
너는 너고, 나는 나고,
쪼개지고 갈라진 짝짝이들이 멀리 가지도 못하는
순둥이 등신들이라
떨어지면 그만인 것을 마치 짝처럼 붙어 앉아
등 돌리고 기웃거리는 오묘함
짝짝짝, 박수를 친다 가까운 앙숙의 화해를 위해
끝끝내 너는 너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위해
지워진 듯 갈라진 경계는 투명해도 경계다
그러니 짝짝이면 어때?
# 김태완 시인은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신탄진에서 성장했다. 2000년 계간 <오늘의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추억 속의 겨울은 춥지 않다>, <마른 풀잎의 뚝심>, <왼쪽 사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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