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움에 대하여 - 김사인
내 뒷모습으로 온다
담벼락에 기대 소피를 보고
부르르 떠는 내 취한 어깨로 온다
오스스 돋는 몇 알 소름에 온다
멋대로 팔을 뻗고 잠든
딸아이의 납작한 코로 온다
말려 올라간 종아리로 온다
마른 버짐 돋는 아내의 텅 빈 눈빛으로 온다
내 에미 애비의 바랜 얼굴과 그 석 자 이름으로 온다
벗들, 벗들의 처진 어깨로 온다
눈꺼풀 덮어누르는 야속한 졸음으로 온다
*시집, 밤에 쓰는 편지, 문학동네
한 사내 - 김사인
한 사내 걸어간다 후미진 골목
뒷모습 서거프다 하루 세 끼니
피 뜨거운 나이에
처자식 입 속에 밥을 넣기 위하여
일해야 하는 것은 외로운 일
몸 팔아야 하는 것은 막막한 일
그 아내 자다 깨다 기다리고 있으리
차 소리도 흉흉한 새로 두시
고개 들고 살아내기 어찌 이리 고달퍼
비칠비칠 쓰레기통 곁에 소변을 보고
한 사내 걸어간다 어둠 속으로
구겨진 바바리 끝엔 고추장 자국
# 이 시집은 1987년 청사에서 나온 시집을 1999년에 재출간한 시집이다. 이것이 김사인의 첫 시집이다. 1980년대 후반까지 나는 시를 거의 읽지 않아 윤동주, 김소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시 보느니 소설 읽겠다였다. 지금은 소설 보느니 시 읽겠다다. 이런 시가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철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는가. 서른 살의 감성을 남겨두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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