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난한 날의 행복 - 성선경

마루안 2014. 2. 19. 21:51



가난한 날의 행복 - 성선경



가난도 행복幸福이 되는 걸까.
몇 분간 나를 기쁘게 할 자동판매기 앞에서
이백 원의 은전과 다섯 닢의 동전을 들고
한 모금 담배를 뿜으며 짤랑거리는 자유
가난도 정말 행복이 되는 걸까.
급우들은 튀김집으로 우동집으로
학교 앞 싼 국물들을 핥으며 흩어지고
김소운金素雲의 그리움과 나만 남아서
가만가만한 목소리로 갈앉아
내 사랑의 기원을 헤아리다
책을 덮으면, 쉬 배고픈 오후
왕후王后의 밥도
걸인乞人의 찬도
배부른 그 무엇도 되지 못하는
몇 가락의 컵라면을 건져 올리며
그대에게 들려주는 가난한 날의 행복
정말 행복이 되는 걸까.



*시집, 바둑론, 문학의전당








세샹의 모든 눈을 속이며 - 성선경



내 얼굴은 속임수다.

내 나이보다 고즈넉한

다방 구석에 숨어 담배를 피울 때나,

더 심각한 얼굴로 몇 날

보이기 시작한 새치를 걱정할 때에는

정말 거짓말이다, 남들이

내 나이를 물어올 적마다

경자생庚子生 쥐띠임을 부끄러워할 때

혹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임을 운운할 때

성씨 문중의 먼발치쯤 버려진 장손長孫임을

뭐라도 되는 것처럼 열을 올릴 때에는

참말이지 내 얼굴은 속임수다

세상의 모든 눈물을 속이고

부끄러운 내 양심마저 속이고 슬며시

한 살쯤은 더 높여 나이를 말하고 싶어질 때

자주 빗질하지 않은 내 외모를, 내 나이를

행복에 취한 듯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싱그러운 암내를 풍겨 주었을 때

내 얼굴은 엄청난 속임수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