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지금만은 그들을 - 손월언

마루안 2015. 9. 15. 23:52

 

 

지금만은 그들을 - 손월언

 

 

지금만은 그들을 잊어도 좋으리

지구에 사는 행복감에 젖어

불타는 노을빛에 몸 붉은

구름들의 이름을 불러봐도 좋으리

 

거대한 고인돌 구름은 무거워 천천히 동쪽으로 가고

맘모스 갈비뼈 구름은 어느 순간 흩어져 멸종되고

게바라의 베레모는 검은색이었다가 붉은색으로 변한다

 

가슴 깊이 억누른 자유 아닌 것들을 지금만은 잊어도 좋으리

지구에 사는 행복감에 젖어

저 장엄한 붉은색을 온몸에 물들여도 좋으리

구름 되리, 구름 되리, 구름이 되어도 좋으리

 

 

*시집. 마르세유에서 기다린다, 문학동네

 

 

 

 

 

 

노을 A - 손월언


오늘 해는 도시의 복잡한 전깃줄처럼 펼쳐진 구름을 거느렸다
빛은 부드럽고 하늘은 여러 가지 색깔을 입었다
붉은 색 사이에 끼쳐 있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옥색을 본다
갈매기도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노을을 본다

마르세유에는 겨울 한 철 날마다 노을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었다
노을이 사위고 나면 갑자기 들리는 파도 소리에 놀라서
몸 기댄 벤치를 만져보며 밤으로 돌아가던 사람
높이 떠서 노을을 보던 갈매기가 부러웠던 사람
겨울 한철, 날마다 바닷가를 거닐며 바다를 가슴에 안았던 사람이 있었다

 

 

 

 

# 손월언 시인은 1962년 전남 여수 출생으로 추계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9년 <심상> 신인문학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오늘도 길에서 날이 저물었다>, <주머니를 비우다>가 있다. 1994년 프랑스로 이주하여 현재 파리에 살고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렇게 어머니를 만나야 했다 - 임경섭  (0) 2015.09.29
호시절 - 심보선  (0) 2015.09.22
조팝꽃 눈물 - 서상만  (0) 2015.09.15
또 한여름 - 김종길  (0) 2015.08.28
잘 있거라, 내 여름의 강 - 이면우  (0) 2015.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