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람의 소유 - 조정권

마루안 2015. 11. 19. 00:10



바람의 소유 - 조정권



외솔은 혼자서는 향기를 낼 수 없는 나무


설한풍雪寒風 끌어안고

살 비비다

멈춘 어느 오후

저 외솔의 향


어쩌나

네 향은 네 것이 아닌 걸


우리 삶도 내 것이 아니라

내가 부딪힌

바람의 것

 

*시집, 먹으로 흰 꽃을 그리다, 서정시학








적막한 하루 - 조정권



관산망월도觀山望月圖에서 둘러메고 있던 눈 맞은 소나무.

빙폭구곡도氷瀑九曲圖에서 잔등에 둘러멘 청룡도.


봉해버린 금서禁書의 겉장을 열면 입산금지 푯말이 나왔다.

숲은 돌아앉아 뒤통수만 보여주고 있었다.

그 길을 몰륨 조그맣게 줄여놓고 들어갔다.

새소리 물소리

솔바람소리 봉해져 있는

입구부터 길은 막혀 있고

하루 종일 적요 속에서

고요에 휩싸였다.

해 떨어진 저녁엔 낚시터에서 벙어리 노인을 만나

붕어들을 받아오며

말을 거는 실수를 또 저질렀다.

말을 저지르는 이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이런 사소한 실수로 오늘밤 나는 문상을 가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