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소유 - 조정권
외솔은 혼자서는 향기를 낼 수 없는 나무
설한풍雪寒風 끌어안고
살 비비다
바람 멈춘 어느 오후
저 외솔의 향
어쩌나
네 향은 네 것이 아닌 걸
우리 삶도 내 것이 아니라
내가 부딪힌
바람의 것
*시집, 먹으로 흰 꽃을 그리다, 서정시학
적막한 하루 - 조정권
관산망월도觀山望月圖에서 둘러메고 있던 눈 맞은 소나무.
빙폭구곡도氷瀑九曲圖에서 잔등에 둘러멘 청룡도.
봉해버린 금서禁書의 겉장을 열면 입산금지 푯말이 나왔다.
숲은 돌아앉아 뒤통수만 보여주고 있었다.
그 길을 몰륨 조그맣게 줄여놓고 들어갔다.
새소리 물소리
솔바람소리 봉해져 있는
입구부터 길은 막혀 있고
하루 종일 적요 속에서
고요에 휩싸였다.
해 떨어진 저녁엔 낚시터에서 벙어리 노인을 만나
붕어들을 받아오며
말을 거는 실수를 또 저질렀다.
말을 저지르는 이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이런 사소한 실수로 오늘밤 나는 문상을 가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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