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억새꽃 - 김일태

마루안 2018. 1. 11. 12:17

 

 

억새꽃 - 김일태

 

 

살아서 잠시 꽃이 되었다가

흔적 없이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피운 대로 스스로 죄다 누리고 간 이들입니다

 

세상에는 죽어서야 오래도록

꽃이 되는 이들도 있습니다

피우지도 누리지도 못하고 간 이들입니다

 

칼날 같은 잎으로 의지를 다지며

살아 있는 뭇 것들이 모두 숨어 들어갈 때

죽어 하얗게 자신을 펼치는 풀꽃이 있습니다

 

겨울 바람 속으로

한 낱 한 낱 홑이름 날려 보내는

그런 풀꽃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이 있습니다

 

 

*시집, 어머니의 땅, 동학사

 

 

 

 

 

 

날개 - 김일태

 

 

흘러간 유행가

날개를

라디오로 듣습니다

 

전답 팔아 서울 가서 가수 되려 했던

삼 이웃 근동에서 노래인기 제일 가던

진경이 형

날개 꺾여 돌아와서

기타 치며 부르던 노래입니다

 

날아라 날아라

눕지 말고 날아라

 

끝내 히트곡 하나 없이 날개만 퍼덕이던

장가도 못 간 진경이 형

이제는 오십 줄에 들었을 듯싶습니다

 

날개만 없었더라도

날려 들지 않았을 텐데

기타 치며 목을 뽑아 날개를 노래하던

타조 같던 진경이 형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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