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새로운 인연을 위해 - 김일태

새로운 인연을 위해 - 김일태 -영월의 일기. 32 이승의 당신 모습 무던해져 가고 내생에 다시 만날 인연 그려보면서 가슴 설레게 되네요. 내 곡진 이력이 내생에 무슨 부귀영화 담보할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다만 후회 없이 살았다 라고만 여기지요. 다시 같은 삶 주어지더라고 또다시 이런 인연을 택하고 왔던 길 밟아올 것 같아요 이제 곧 당신이 기다리지 않는 곳으로의 긴 여행이 시작되겠지요. 오랫동안 채비를 해온 터여서 걱정도 없고 가을 나뭇잎처럼 가벼이 홀가분히 떠나려 해요. 천주산을 내려 갓골 도계 건너 명곡 바다로 흘러간 물 다시 거슬러 오르지 않듯 우리들 세월 그리 흘러갔다지만 길 끝에 다른 길이 시작되듯이 땅과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서로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듯이 새로운 인연도 그리 돌 거라 나는 믿지..

한줄 詩 2018.03.07

운명 - 김해동

운명 - 김해동 새파란 손을 붉은 햇살 속으로 밀어 낼 때부터 내 몸은 이미 물들었는지 몰라 여리고 순한 마디들이 밀려나올 때마다 끝내 주저앉아 버릴 관절들을 염려했는지 몰라 몸에 돋은 하얀 솜털로 생애의 물기를 쓸어가며 벌레, 수십 마리쯤 먹여 살렸지 비바람과 푸르죽죽한 문을 여닫을 때마다 어떤 사연들이 씨앗으로 여무는지 딱히 몰랐다 까맣게 타 들어 간 시간만이 입을 쩍 벌리고 씨앗들을 준비한다 가을이 아름답다고 누군가 감탄하기 시작했을 때 나무들 또 다른 삶을 준비했는지 가지 끝에서부터 말문을 닫고 식음을 전폐했다 입만 딱 벌리고 숨조차 쉬기 힘든 어머니 그녀의 생애가 산소마스크에 매달려 입속으로 붉은 혓바닥이 말려들어 가고 있다 검게 물든 한 장 낙엽처럼 *시집, 비새, 종문화사 수목장 - 김해동 ..

한줄 詩 2018.03.07

족두리꽃 아내 - 손순미

족두리꽃 아내 - 손순미 기장읍 청강리에 족두리꽃이 산다 철길이 석쇠처럼 달아오른 그곳에 상자같이 조그마한 집에 사는 사람이 슬며시 내놓은 화분에 산다 아내가 없는 사람이 아내 같은 족두리꽃을 심어 두었다 가진 거라곤 몸뚱이밖에 없는데 그는 온종일 밥도 안 먹고 엎드려 있다 한 마리 생선처럼 누워 있다 족두리꽃 향기가 그 안을 기웃거린다 샹들리에 같은 족두리꽃이 화려한 족두리를 쓴 연분홍 향기가 사내 품속을 파고든다 우리 다시는 태어나지 말자, 태어나지 말자 *시집, 칸나의 저녁, 서정시학 고등어 파는 사내 - 손순미 저, 소금을 칠까요? 내가 지그시 눈을 감아주자 남자의 눈이 고등어 눈처럼 우울하게 빛났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남자의 손등을 물결쳐 나갔다. 당신을 믿을 수 없어요! 끔찍한 추억이, 집..

한줄 詩 2018.03.06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 조기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 조기조 오바로꾸 미스 김이 그만둔단다 어찌 생각하면 좀 창피하기도 해서 배가 더 불러오기 전에 오바로꾸 미스 김이 이번 달만 하고 그만둔단다 미스 김이 그만둔다니 심란해하는 총각들 중에 말은 안해도 신바람이 난 건 칙- 칙- 휘파람 불어대며 프레스 밟는 스물 일곱 박 기사다 둘이 눈 맞은 건 지난 봄 임투 박 기사 깨진 마빡을 미스 김이 머리띠 끌러 싸매준 거다 죽고 못사는 미슨 김 박 기사가 차마 한 살림 차릴 형편은 못 되어서 한 삼 년만 기다리자고 약속은 했는데 덜컥 아이가 생기고 말아 식은 나중에 올리기로 하고 그냥 살기로 했단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즤 엄마 아빠를 하나로 엮어준 거다. *시집, 낡은 기계, 실천문학사 무공해 빵 - 조기조 그녀는 이미 늙어 더..

한줄 詩 2018.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