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향기 난다 - 박철

마루안 2018. 3. 6. 19:59



향기 난다 - 박철



홍매꽃이 붉게 다시 한 사연을 준비하는 밤
처음 가는 길이지만 되돌아오던 기억은 있다
더 몇 세기 전 누군가 세 덩이 돌을 올려 의자를 만든 그늘
밤에는 거기 노루라도 앉아 손바닥 마주치며
그려, 그려 하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깊은 곳에 새들이 못을 박으면 거기 내 남루를 걸쳤던 기억도 난다
혼자였던가 아니었던가
그것마저 희미한데 자귀향은 분명 당신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냄새를 품는 일
모든 냄새 아름답지 않아도 익숙해지면
거기 물관부 처지며 사랑이 들어선다
오늘도 킁킁거리며 달려가는 자동차들이나
돌아서며 코 움켜쥐는 가로수들이나
모두 제 할 일에 등이 굽은 밤
사랑하는 일은 향기를 주고받는 일
깊은 골짜기에 들어와 당신의 냄새를 찾는다
별들도 빨대를 대 우리를 시기하지만
무릇 숨 쉬는 자는 사랑하는 자
영 처음 겪는 일이겠으나 언제나
되돌아오는 길은 초행이고
낯선 향기 가장 익숙한 법이다



*시집, 작은 산, 실천문학사








파란 달 - 박철



저기 환장한 이 하나 있네
그 얼굴 보니 환장하겠네
오늘은 당신 없이 하루를 살 수 있겠네
길 잃은 밤 더 다가선다는 거리의 여인
깊은 숲에서도 외로움만 더했으니
나 이제 마음의 먼지 조금 걷혔나
막차까지 기다려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따라오는 이
저이 환장하게 화장을 했네
점점 더 다가오네 끓으며 터지는 열정으로
돌아보니 마음 더욱 환장하겠네
나 지불할 돈 없어도
오늘은 당신 없이 살 수 있겠네





*시인의 말


건너 아파트에 불빛이 하나 남아 있다
하늘도 잠시 쉬는 시간,
외눈처럼 박힌 저 불면이
헛된 기다림이 아니라
충만한 노동의 끄트머리였으면 좋겠다
예서 제로 마음의 빨랫줄 늘이니
누구든 날아와 쉬었다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