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족두리꽃 아내 - 손순미

마루안 2018. 3. 6. 22:20

 

 

족두리꽃 아내 - 손순미


기장읍 청강리에 족두리꽃이 산다
철길이 석쇠처럼 달아오른 그곳에
상자같이 조그마한 집에 사는 사람이
슬며시 내놓은 화분에 산다
아내가 없는 사람이
아내 같은 족두리꽃을 심어 두었다

가진 거라곤 몸뚱이밖에 없는데
그는 온종일 밥도 안 먹고 엎드려 있다
한 마리 생선처럼 누워 있다

족두리꽃 향기가 그 안을 기웃거린다
샹들리에 같은 족두리꽃이
화려한 족두리를 쓴 연분홍 향기가
사내 품속을 파고든다
우리 다시는 태어나지 말자, 태어나지 말자


*시집, 칸나의 저녁, 서정시학


 

 

 


고등어 파는 사내 - 손순미


저, 소금을 칠까요? 내가 지그시 눈을 감아주자 남자의 눈이 고등어 눈처럼 우울하게 빛났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남자의 손등을 물결쳐 나갔다. 당신을 믿을 수 없어요! 끔찍한 추억이, 집 나간 아내를 향해 고등어 푸른 목을 향해 칼을 내리친다. 어디, 얼마나 잘사나 두고.... 남자는 노련한 검객이다. 순간, 고등어 영혼이 바다로 건너가는 소리를 빗소리가 삼켰을 것이다.

사내는 익숙한 솜씨로 철철, 눈부신 소금을 뿌렸다. 잠깐 동안 메밀꽃이 피는가 했다. 검은 봉지를 받아들자 사내의 생애가 훅, 풍겨 나왔다. 바다는 하늘에 떠 있고 빗물은 소금처럼 짜다. 사내와 비 사이에 서 있는 어둠이 무겁다, 우우 어둠의 무게가 버거워 비는 다시 한번 난전 바닥을 치기 시작한다. 비의 파편을 피해 처마 밑에 어둠처럼 깃든 사람들, 그때, 무기력한 눈을 미안하게 켜는 알전구가 어둠을 지워 가는 시각.




*시인의 말

나는 삶에게 미안하고 문학에게 미안하다.
내가 탕진한 삶과 문학에게
이제부터라도 詩라는 공양(供養) 하나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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