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내가 아직 내가 아니었을 때 - 정소슬

내가 아직 내가 아니었을 때 - 정소슬 -좌우 내가 아직 내가 아니었을 때 너였을 수도 있었을 때 대부분 하등동물이 등과 배가 달라 색깔 구분이 확연하여 뒤집히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의 정체 금세 탄로 나 먹이가 되기 십상인 먹힐 땐 등과 배를 구분하지 않는 위아래 구분도 않는 좌우 구분은 더더욱 않는 너였을 수도 있었을 내가 기꺼이 내가 되었다는 건 반쪽의 너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을까 *시집, 사타구니가 가렵다, 도서출판 푸른고래 어제 내린 꽃비 - 정소슬 어제 내린 꽃비 한나절 덩싯덩싯 꽃춤 추어대더니 땅속으로 다 스며들고 강물에 다 떠내려가고 진창에 고인 물로만 희붉게 남았습니다 어제 그 꽃비의 흔적은 오로지 저 진창뿐입니다 저 진창만이 어제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어제의 영화를 증거해야 할 진창엔 어느..

한줄 詩 2018.03.27

망둥이가 살아 있다 - 이봉환

망둥이가 살아 있다 - 이봉환 압해도 송공항 선착장에서 육지 사내 셋이 반짝이는 바다가 제 것인 양 낚시줄을 휙휙 끌어당긴다 그때마다 쏙쏙 바다는 몸을 빼내버리는데 사내들 줄곧 팽팽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때! 배고픈 한 마리 덥석 미끼를 물어 냅다 잡아챈다 에라, 이, 망둥이 새끼잖아 이빨로 줄을 툭 끊은 육지 사내 목구멍에 걸린 낚싯바늘도 안 빼주고 무거운 봉돌까지 매단 놈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산 채 바다 깊이 수장돼버린 망둥이 새끼 뻘바닥에 처박혀 어린 눈을 끔벅일까 발버둥 칠까 하루 이틀 하고도 십 년이 흘렀는데, 그 새끼들 어찌됐을까 제 힘으로는 벗어날 도리가 없는 줄을 붙들고 펄펄 살아 날뛰던 계만이형의 어린 새끼들 동네 빈집 골방에 박혀 며칠을 끙끙대다가 비소 덩어리 삼켜버린 아래뜸 ..

한줄 詩 2018.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