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가 살을 빼야하는 이유 - 윤제림

마루안 2018. 3. 22. 21:03



내가 살을 빼야하는 이유 - 윤제림



나는 곧 인도에 도착할 것이다, 길을 모르니
릭샤를 부를 것이다


체중 미달로 병역이 면제된
본희 형보다 가냘픈 사내에게,
꽃을 밟아도 꽃잎 하나 다치지 않았을
피천득 선생만큼 가벼운 남자에게
몸을 맡길 것이다


사내는 나를 옮겨 실으며
눈으로 물을 것이다
-뭐가 들어서 이렇게,
 불룩하지요?


그러고는 옛날 서울역 지게꾼처럼
기를 쓰고 일어나며 페달을 밟을 것이다
릭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할 때
맨발의 사내는
혼잣말처럼 또 이렇게 물을 것이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무겁지요?



*시집, 새의 얼굴, 문학동네








작년 그 꽃 - 윤제림



말이 쉽지,
딴 세상까지 갔다가
때맞춰 돌아오기가
어디 쉬운가.
모처럼 집에 가서
물이나 한 바가지 얼른 마시고
꿈처럼 돌아서기가
어디 쉬운가.
말이 쉽지,
엄마 손 놓고
새엄마 부르며 달려오기가
어디 쉬운가.


이 꽃이 그 꽃이다.





# 윤제림 시인은 1960년 충북 제천 출생으로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삼천리호 자전거>, <미미의 집>, <황천반점>, <사랑을 놓치다>, <그는 걸어서 온다>, <새의 얼굴> 등이 있다. 현재 서울예술대 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