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휘늘어진 곳에서 보내다 - 천수호 가로등 하나, 시골 밤의 바지랑대다 폭싹 꼬꾸라질 듯 삭은 밤이 불빛 하나에 온몸 지탱하고 있다 저렇게 매달리기만 하면 이쪽 끝에 치렁치렁 닿은 어둠의 가랑이 다 젖고 말 텐데 그래도 바지랑대는 저렇게 어둠이 휘늘어진 곳에 받치는 것 당신 보내고 바라보는 가로등 하나 시골 밤의 바지랑대다 내 가랑이 다 젖도록 바라본다 저쪽 끝에서 다시 팽팽히 당기는 당신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민음사 감물 - 천수호 감물이라는 잘 지워지지 않는 지명이 있다 슬쩍 스친 지명이지만 가슴엔 한 점 얼룩이 돋아 도톨하게 만져진다 떫은, 목메는 감물 흔적이다 일찍 떠난 내 큰언니의 초경 자국, 한 방울 남짓 떨구고 간 그 댕기 머리 뒷모습을 나 또한 엄마처럼 못다 배웅했는지 삼십 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