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봄불 놓는 여인 - 이소암

봄불 놓는 여인 - 이소암 간밤 천상의 나그네 네 방을 두드렸다 오래도록 네 몸 헹궈내는 소리 들렸다 네 몸을 열면 공기의 속보다 투명한 고요가 지친 달이 몸을 뉘이는 오두막이, 남아 있는 내 생을 걸어 두고 싶은 벽이 있었다 그러나 몹쓸 꿈을 꾼 것이냐 미풍의 실핏줄까지 비춰내는 햇살 보란듯이 기대어 타락타락 봄불 놓는 여인이여, 나는 오늘 밤 일기를 쓴다 없다고 쓴다, 목련 *시집, 내 몸에 푸른 잎, 시문학사 내 몸에 푸른 잎 - 이소암 가까이 있는 그를 멀리 보고 돌아온 날 저녁 마지박 동백잎 뛰어내렸다 한 잎이 몰고 온 강한 회오리바람, 기억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격리시킬 듯 가슴 한복판 굵은 기둥을 세우며 치솟아올랐다 휩쓸리지 않으려면 깊숙이 뿌리를 박아야 해, 먼저 낙하한 동백잎들이 종잇장같이..

한줄 詩 2018.04.01

마음의 종로 - 조항록

마음의 종로 - 조항록 마음의 종로에 간다 과객들 목만 축이고 지나가는 내가 우물 같을 때 거기 한 잎 떠 있는 가랑잎 같아 후 불면 비켜나고 부딪히면 바스러질 때 종로는 마음에도 있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사실이 타종하는 보신각을 지나 들어갈 뿐 나오는 것이 아닌 종로서적에 들러 잠깐 뒤적이고 구호물자 배급받듯 해바라기하는 그저 놀라운 탑골공원 지나 갸웃거리는 국일관 거리까지 정처 없는 종로에 간다 오랜만의 잠인 듯 그대로 금방이라도 쏟아지려는 흐린 하늘의 침침해도 붐비는 마음의 종로 사랑을 굴삭하는 피카디리 앞 연인은 서성이고 노을지면 눈매 매서운 사람들의 울고 넘는 목쉰 노래도 듣는다 함께 붐비며 닿는 대로 걷다 다녀오면 가슴께가 찰랑찰랑해지는 마음의 종로 *시집, 지나가나 슬픔, 천년의시작 치명타..

한줄 詩 2018.03.31

진달래 필 무렵 - 최정

진달래 필 무렵 - 최정 -엄마의 꽃2 언제 꽃 피는지 잊어버린 목소리가 녹슨 호미날 같다 진달래 꺾어 꽂아두고 꽃 보러 오라 전화하던 어머니 지천으로 꽃 피었을 산이 궁금해 달려가곤 했다 뜰아래 채송화처럼 은근히 모녀지간 확인하던 진달래 필 무렵 꽃 보러 오란 말씀 없는 칠십 고개 어머니가 궁금해 달려가는 다시, 진달래 필 무렵 언제 꽃 피는지 잊어버린 목소리가 녹슨 호미날 같다 *시집, 내 피는 불순하다, 도서출판 우리글 불면증 - 최정 내 피는 불순하다 이웃집 담장 기웃거리는 암고양이 눈빛처럼 수상하다 단 한번도 사랑을 믿지 않았던 것처럼 불임(不姙)의 세월 친친 감아 단단한 고치 틀고 동그랗게 말려 잠들고 싶은, *서시 저녁마다 타오르는 노을의 붉은 심장을 훔치고 싶었다. 왜, 어둠과 만나야 아름..

한줄 詩 2018.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