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덫 - 박순호
발목이 떨어져나가는 아픔도 모르고 현란한
춤 속에 묻어 있는 향기
오직 절정만을 꿈꾸려는 사람들
입다문 거리에 붉은 덫이 드러나면
쉬운 사랑이 쉽사리 덫에 걸려
옷 벗는 일이 부끄럽지 않는 밤
오늘도 홍등가의 불빛은
외로운 나를 부르지 않는다
*시집, 다시 신발끈을 묶고 싶다, 문학마을사
염세(厭世)의 풍경 - 박순호
1.
깨어나면 알 수 없는 서러움
언제나 그만그만한 크기의 벽지꽃처럼
성장이 멈춰 벽이 되는 밤
벽 속에 갇힌 값싼 꽃 한 송이
이슬방울이 구르지 않고 꿀벌도 나비도 없는 고요한 정원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아침
시들지 않는 꽃밭이여
2.
태양을 등진 검은 아가리 속
출행랑치는 전철 안
밤낮을 거슬러 돌진하는 지하 세계
그 깊은 안쪽 종착역에서
포기한 사람을 그리워할수록 배가 고프다
손에 쥔 나침반 바늘은 오늘 어떤 별에서
나의 하룻밤을 책임질 수 있을까
3.
아버지 산소 앞에 무릎 꿇고 술 한 잔 올린다
막 터져버린 씨앗처럼
속마음 확 털어내어 보아도
지루하지 않는 아버지의 침묵
날이 저물어 내려오는 오솔길에서
이제 나의 씨앗을 뿌려놓고 기다리고 싶다
때가 오면 스스로 시들 줄 아는 꽃
꽃씨를 받아낼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4.
강 하류로 떠내려가는 모래알
채를 쳐 고운 모래를 비벼
담장도 되어주지 못하고
시멘트길도 되어주지 못했던 녹슨 기억
이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대의 방바닥에 고운 모래알을 깔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쌓은 담은 그대의 키를 넘어선 지 오래다
5.
오랜 시간 절벽 위에 머물던 부정의 새처럼
어딜 가나 그물이 쳐 있고
덫이 쫙 깔려 있다는 생각으로
걸을 수도 날을 수도 없는 가시밭길
자꾸만 뒤를 돌아보다 발을 헛딛는 꿈
아무도 없는 눈 덮인 벌판
그러나 자세히 보라
그대의 벌판에 눈사람 하나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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