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달콤한 덫 - 박순호

마루안 2018. 3. 30. 19:57

 

 

달콤한 덫 - 박순호

 

 

발목이 떨어져나가는 아픔도 모르고 현란한

춤 속에 묻어 있는 향기

 

오직 절정만을 꿈꾸려는 사람들

 

입다문 거리에 붉은 덫이 드러나면

쉬운 사랑이 쉽사리 덫에 걸려

옷 벗는 일이 부끄럽지 않는 밤

 

오늘도 홍등가의 불빛은

외로운 나를 부르지 않는다

 

 

*시집, 다시 신발끈을 묶고 싶다, 문학마을사

 

 

 

 

 

 

염세(厭世)의 풍경 - 박순호

 

 

1.

깨어나면 알 수 없는 서러움

언제나 그만그만한 크기의 벽지꽃처럼

성장이 멈춰 벽이 되는 밤

벽 속에 갇힌 값싼 꽃 한 송이

이슬방울이 구르지 않고 꿀벌도 나비도 없는 고요한 정원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아침

시들지 않는 꽃밭이여

 

2.

태양을 등진 검은 아가리 속

출행랑치는 전철 안

밤낮을 거슬러 돌진하는 지하 세계

그 깊은 안쪽 종착역에서

포기한 사람을 그리워할수록 배가 고프다

손에 쥔 나침반 바늘은 오늘 어떤 별에서

나의 하룻밤을 책임질 수 있을까

 

3.

아버지 산소 앞에 무릎 꿇고 술 한 잔 올린다

막 터져버린 씨앗처럼

속마음 확 털어내어 보아도

지루하지 않는 아버지의 침묵

날이 저물어 내려오는 오솔길에서

이제 나의 씨앗을 뿌려놓고 기다리고 싶다

때가 오면 스스로 시들 줄 아는 꽃

꽃씨를 받아낼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4.

강 하류로 떠내려가는 모래알

채를 쳐 고운 모래를 비벼

담장도 되어주지 못하고

시멘트길도 되어주지 못했던 녹슨 기억

이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대의 방바닥에 고운 모래알을 깔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쌓은 담은 그대의 키를 넘어선 지 오래다

 

5.

오랜 시간 절벽 위에 머물던 부정의 새처럼

어딜 가나 그물이 쳐 있고

덫이 쫙 깔려 있다는 생각으로

걸을 수도 날을 수도 없는 가시밭길

자꾸만 뒤를 돌아보다 발을 헛딛는 꿈

아무도 없는 눈 덮인 벌판

그러나 자세히 보라

그대의 벌판에 눈사람 하나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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