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잊읍시다 - 고철

마루안 2018. 4. 19. 22:19



잊읍시다 - 고철



무서리 떠난 다음에야 봄의 꽃들은 노을을 취한다
봄은 먼저 보는 자가 주인이다
적어도 이 뻘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저잣거리는 흙비린내가 너무 많은지
오구려 나앉아 구토를 참아 보지만
저 이의 흰 머리엔 쇳조각 하나 꽂아 있질 않다
귀를 찢어서 팔아볼까 눈을 찢어서 팔아볼까
코 닳은 꽃고무신을 수선해 팔아볼까
손풍금이라도 들리는 것인지 과거 어느 한때를 보는 일이 많은 날인지
순천 5일장에서는
제 입 하나도 다 채우지 못하는 손금들이 많다
뼈가 없어야 살 수 있는 곳,
순천만에서는 딱딱해서는 살아내지를 못한다
설령 있다손 쳐도 말랑말랑한 부리로 침을 발라 먹기 때문에
뼈대 있다 하는 건 큰 문제가 되지를 않는다
뻘이 길이자 길이 뻘인 것이다
그러니 물렁한 것 외에는 다 뻥이다
소금 만들어 부엌으로 들이는 일과
다시금 그 소금을 단물로 만드는 재주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게선 전생의 단서 같은 건 없다
다만,
입 벌리고 죽은 지느러미 길었던 먼저 간 지아비의 그리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저녁 고요한 호롱불처럼 등 밝혔던 포구의 마을
한 잔 해장으로 순천을 다 본다는 건 억지다 딱딱한 억지다



*시집, 고의적 구경, 천년의시작








雨節氣 - 고철

 


작당을 한 듯

빗소리만
겹겹 쌓이는 타박한 날엔
내리 잠만 자고 싶었다


속내 알 수 없는
집집의 내력들처럼
어쩌면 이 소리라는 것에도
정하디 정한 옛사람의 기억과
추억,


그 버거운 그리움을
나는 알지


숟가락 같은 전생이 뜬금없이 와서는
밤낮없이
생채기만 헤집어 놓고



*고철 시집, 핏줄, 다인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