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봄, 싫다 - 이규리

봄, 싫다 - 이규리 백골 단청, 하얀 절 한 채 지금 막 무너지고 있다 그걸 받아 안는 한낮 무너져도 소리가 없다 저걸 누가 고요라 했겠다 언제 왔다 갔는지 만개한 벚나무 아래 신발 한 켤레 봄마다 땅속으로 마약을 주사하는지 이맘때, 거품 물고 사지를 틀다 몸서리 잦아드는 마흔 노총각이 있지 깜빡 까무러진 대낮이 있지 백약이 무효한 청춘 덤불처럼 걷어내고 이내 어깨를 허문 잠, 누가 고요라 했겠다 더 이상 속지 말자 해놓고 속는 게 꽃 탓이라 하겠나 약 탓이라 하겠나 너무 가까워서 안 보이는 것도 있지 취하게 하는 건 향이 아니라 취하고 싶은 제 뜻일 텐데 그래, 나무가 언제 꽃 피웠나? *시집, 뒷모습, 랜덤하우스 날개, 무겁다 - 이규리 어젯밤, 창에 날개를 부딪고 죽은 나비 휴지로 곱게 싸놓았는데..

한줄 詩 2018.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