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꽃의 흐느낌 - 김충규

마루안 2018. 4. 18. 18:56



꽃의 흐느낌 - 김충규



꽃의 흐느낌이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밤,
그 흐느낌은 화려한 향기를 며칠 동안 내뿜은
뒤에 오는 격렬한 후유증인 것
꽃은 지금 제 종말을 나에게 타전하고 있는 것
내일 아침 눈 뜨면 가장 먼저 죽은 꽃에게 문상을 가리라
검은 하늘이 제 욱신거리는 통증 자리에
달 파스를 발라놓고 뒤척이는 밤,
가늘게 흐느끼며 죽어가는 꽃을 위해
내가 준비한 위로는 아무것도 없다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겨
이미 덤으로 살고 있는 내가
다른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다만 꽃의 흐느낌이 내 몸에 고스란히
떨림으로 다가와 잠 못 들고 있는 것일 뿐



*시집, 물 위에 찍힌 발자국, 실천문학사








내 영혼을 향해 공포탄을 쏜다 - 김충규



소리 없이 몰려온 어둠이 내 몸에 촘촘히 박힌
햇빛을 끄집어내어 불사르는 저녁,
세상 밖을 향해 열려 있는 내 귀를 통해
내 몸속 어둠이 내(川)를 이루며 흘러나온다
흘러나온 어둠이 내가 딛고 선 땅을
축출하게 적셔놓으며 울음처럼 멀어진다
어리석은 나, 불멸을 꿈꾸었으니
그 꿈 이루어질 땅이 이 세상 밖의 다른 세상이기를 원했다
불멸을 꿈꿀수록 몸속에선 어둠이
영토를 넓히는 줄 모르고 지냈다
시립 화장터에서 큰형의 뜨거웠던 생이
한 줌의 뼛가루로 고요해지는 것을 목격한 뒤,
불멸의 꿈은 한순간 하얗게 소멸되었다
불멸을 꿈꾸었던 동안 나를 지탱해온 것은
죽음에 대한 집착이었음을 고백한다
이제 나는 어둠 속에서 내 속의 어둠을 몰아내며
내 영혼을 향해 경고의 공포탄을 쏜다
버둥거려온 몸뚱이를 어둠의 제단에
제물로 올려놓고 싶다
달--, 저 환한 묘혈 속에 들어가 눕고 싶은 밤
나는 이제 세상 밖이 아닌
이 세상 안에서의 소란하고 유한한 삶을 긍정한다
함부로 꾹 눌러 죽였던 하루살이의 삶을
치열하게 존중하기로 한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단자 봄꽃에게 - 이재섭  (0) 2018.04.18
양귀비 수난 시대 - 홍순영  (0) 2018.04.18
꽃이 지거나 지지 않거나 - 이승희  (0) 2018.04.17
영화가 끝난 후 - 박이화  (0) 2018.04.17
봄, 그날에 - 서상만  (0) 2018.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