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미스김 라일락 - 김미옥

마루안 2022. 3. 31. 19:48

 

 

미스김 라일락 - 김미옥

 

 

삼월에서 사월 사이 집중적으로 아파요

지하상가 입구에서 전단 돌릴 때

이마에 꽂히는 햇빛들

겨드랑이에 두 손 넣은 채 마시는 녹작지근한 공기

무관심한 선배들 심부름에도 창밖은 환하게 빛나요

휴일이면 해동된 채 잠만 자요

일억 년 후 깨어났는데

구석기 여인이 되어 있다면

산뜻한데 우울한 기분이 이런 걸까

월급이 제일 적은 내게

경리계장은 십 원짜리까지 철두철미했고요

그 아저씨 도박으로 횡령사고 냈을 땐

내 심장이 더 쫄깃했어요

바람이 확 구부러졌다가 매섭게 감기는 날

개나리 한 아름 화병에 꽂아두고

쓸모없어진 단백질처럼 웃었어요

어릴 때 기억은 중국집 간판처럼 희미하지만

교문 앞 할머니가 팔던 병아리

죽기 살기로 울어대던 주둥이들은 잊히지 않아요

삼사일 못 견디고 기어이 죽어 버린 연골들

최초의 무덤이 고양이들로 파헤쳐지고

며칠 앓아누웠던 매캐한 봄

나만 아는 이 부조리들

어떻게 고백할까요?

스물 하고도 셋이나 먹었는데

봄은 아직도 서먹하기만 해요

 

 

*시집/ 탄수화물적 사랑/ 한국문연

 

 

 

 

 

 

닭띠 여자 - 김미옥


사랑은 항상 끝물 타고 왔다
망해가던 중국집 남자가 스무 살에 왔고
술 상무로 간이 부은 남자는 서른 초반에 왔다
봄 눈 오듯 아프게
여우비 내리듯 감질나게
짧고 묵직하게 가슴을 헤집고 떠났다
모두 망해 와서는 홍해서 갔다
주기를 다하면 별똥별처럼 소멸로 가는 사랑
새집 주면 헌집 받는 여자
꿩 대신 닭 같은 인생이지만
자기가 꿩인 줄 모르는 여자
베인 흔적마다 피자두 같은 이력이 붙지만
전생에 나라 몇 개쯤 말아 먹었다 말하는
대책 없는 낭만
하지만 끝물로 오던 사랑도 잠정 폐업
고통과 뼈대만 남은 횃대에 올라앉아 살찐 암탉처럼 웃고 있다
사람을 품을 때 얼마나 따뜻했는지
그 진심은 또 어찌나 눈물겨웠는지
먹고 사는 데 도움은 하나 안 됐지만
생의 부레가 부풀어 올랐던 기억만으로도 후회 없다는 여자
흔히 볼 수 있지만
눈여겨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