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썰물 연구 계획 - 전대호

마루안 2022. 3. 30. 22:48

 

 

썰물 연구 계획 - 전대호

 

 

이쪽 바닷자락이 슬슬 쓸려나가는 걸 보면서,

수평선 너머 저쪽 자락을 어떤 거대한 손이

쓱 잡아당기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여섯 시간 후

이쪽 자락 도로 슬슬 밀려드는데,

거대한 손은커녕 바닷자락을 문 갈매기조차 안 보여

냉철하게 가설을 바꿨네.

 

수평선 근처 물밑에서 어떤 거대한 손이

거기 한가운데 자락을 엄지, 검지, 중지로 살짝 쥐고

아래로 끌어당겼다 위로 올렸다 하는 것이 틀림없어!

 

수평선 근처 바다는 늘 잔잔하여,

살짝 건드린 자리도 대번에 눈에 뛸 테니,

검증은 일도 아니리.

 

수평선 바로 위에서 저공비행으로

수평선을 넘나드는 사인곡선을 그리면서

거기 잔잔한 바다, 더없이 고요한

그 기하학적 평면을 샅샅이 살피자.

 

꼬집힌 자국이 틀림없이 보일 것이다.

잘 다린 셔츠에 잡힌 구김살처럼 또렷할 것이다.

가자, 수평선으로!

 

 

*시집/ 지천명의 시간/ 글방과책방

 

 

 

 

 

 

봄, 졸음 - 전대호

 

 

수수꽃다리 줄기 휘어

유모차 탄 아기 코에 꽃송이 대주니

우는다, 방긋.

 

천상 포유동물이어서

꽃향기가 좋은 게다.

 

산책에서 돌아와 아기 재운 후,

식물 영혼은 베란다 화초 사이에 빨래처럼 널어놓고

동물 영혼은 아스팔트 위에 고양이처럼 풀어놓고

인간 영혼 혼자 몸 지키며 까닥까닥 존다.

 

지금 스르르 잠입하는 이 햇살이

옳거니 하고서 물고 간다면,

몸이든 창백한 이성이든 하나만 후딱,

옳다구나 하면서 물고 간다면,

 

나 연기처럼, 물감처럼, 물결처럼

봄의 너른 품으로 퍼져나갈 텐데,

곧장 해탈일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