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달력을 얻으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 박대성

마루안 2019. 12. 15. 19:21

 

 

달력을 얻으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 박대성

 

 

연말이면 아버지는 은행, 약국, 백화점을 돌며 달력을 얻으러 다녔다

마치 자신이 주문한 물건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처럼 의기양양

때 묻지 않은 시간을 찾으러 다녔다

하지만 아버지가 얻고픈 시간들은 쇼윈도에서 반짝일 뿐

얻어 올 수 없었다

단골이 아니라는 까닭이었다

 

아버지가 얻어 오는  것은

참이슬, 처음처럼 같은 술 회사나 잡화점 달력들이었다

때문이었는지 집은 늘 시끌벅적 시장통 같았다

달력들은 사시사철 꽃바람 비키니를 입고 가족들을 응원하였다

덕분에 식구들은 무럭무럭 가족이 되었다

 

아버지가 얻어온 달력들이 벽에 걸리면

집은 방금 도배를 마친 것처럼 화사해지고

식구들의 눈동자는 네온사인처럼 반짝였다

 

찬바람이 불면 아버지는 달력을 얻으러 다녔다

 

 

시집/ 아버지, 액자는 따스한가요/ 황금알

 

 

 

 

 

 

매형 - 박대성

 

 

명절도 오래되어

늙은 고향 사람들 같이 온다

반가운 누이 뒤로 느티나무 같은 사람 걸어 나오고

요강 뚜껑 같은 소반에 둘러앉으면

옛집은 웃음을 잣는 물레방앗간

 

어둠도 덩달아 달빛 한턱 내어놓으면

아늑해지는 뒤란 장독대

 

쉬 쉰내를 내는 부침개를 담는

소쿠리 같은 사람

바람 숭숭 잘 통하는 소쿠리 같은 사람

 

누이가 들어 앉아 이제껏 쉰내 없이 살아온

소쿠리 같은 사람

 

 

 

 

# 박대성 시인은 강원도 속초 출생으로 관동대 대학원 상담심리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버지, 액자는 따뜻한가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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