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줄 哀 69

열한 살의 추억

초등학교 4학년, 당시는 국민학교라 했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육성회비라는 것을 내야했다. 어머니는 월사금이라 불렀다. 일종의 수업료였다. 월 160원으로 기억한다. 매월 돈을 낼 때마다 담임이 그 칸에 도장을 찍어줬다. 한 반에 학생은 60 명 남짓이었다. 나는 2학기가 되도록 달랑 한 칸에 도장이 찍힐 때가 많았다. 아침에 담임 선생의 일성은 육성회비를 제때 내는 거라 했다. 며칠 후 육성회비 안 낸 사람을 불러냈다. 첫 날은 스무 명 넘게 불려나온다. 손바닥을 몇 대씩 맞고 넘어간다. 이튿날은 열댓 명으로 줄어든다. 사나흘 후에 딱 두 사람이 불렸다. 그 중에 하나가 나다. 담임은 약속한 날까지 육성회비를 내지 않았다고 벌을 내렸다. 수업 시간에 복도에 나가 의자를 들고 서 있는 벌이다. 한 시..

열줄 哀 2018.05.15

데이비드 구달 박사의 존엄사

빨리 죽고 싶다는 노인의 말이 3대 거짓말에 들어간다지만 그만 살고 싶다는 노인이 있다. 며칠 전에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해 생을 마감한 호주의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 이야기다. 그는 올해 104 세였지만 위독한 병이 없어 비교적 건강한 상태였다. 시력이 나빠 앞을 거의 보지 못하고 걷지 못해 휠체어에 의존할 뿐 정신도 말짱했다. 평소 나도 안락사에 찬성하고 있었기에 많은 생각을 했다. 건강한 사람이 택한 최초의 안락사로 기록된다. 너무 오래 사는 저주를 스스로 극복한 사례가 아닐까. 고국인 호주에서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아 스위스로 갔다. 생의 마지막 여행은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였고 그는 스스로 스위스보다 더 멀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여행길을 떠났다. 전날 ageing disgracefully..

열줄 哀 2018.05.14

남산 도서관의 봄

예전에 열여덟 살 무렵에 남산 도서관을 처음 갔다. 책을 읽기보다 입시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일찍 독립해야 했기에 알바를 하면서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져야 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남아 공부를 하다 도서관이 닫힌 후 늦은 밤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남대문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그 길을 오르고 내릴 때면 남산의 은행나무 길이 계절마다 바뀌는 것을 봤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용산 시가지의 환한 빌딩 숲 사이로 내가 편히 머물 공간 하나 없다는 것이 서럽기도 했다. 그때는 독서실에 먹고 잤다. 근처 식당에서 하루 식권 두 장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잘 때는 공간이 너무 좁아서 의자를 책상 위로 올려 놓고 책상 밑으로 발을 뻗고 잤다. 모든 것에 목말라 있던 때라 수음을 자주 했다. 봄꽃이 환하게..

열줄 哀 2018.04.11

감자 먹는 봄날

고흐의 모든 그림을 좋아하지만 이 그림을 가장 좋아한다. 볼수록 좋다. 어두워서 더 좋다. 영화 을 보면 늙은 아버지와 딸이 나온다. 매일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치고 황량한 풍경이 흑백으로 그려진 영화다. 나는 왜 그림도 그렇고 영화도 이런 영화가 좋을까. 거기서 딸은 매일 요리를 하는데 삶은 감자다. 감자 삶는 것도 요리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뜨거운 물에서 건진 뜨거운 감자를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밖은 거친 눈보가가 몰아치고 말은 마구간에서 거친 숨을 쉰다. 바람에 창문과 문짝이 삐그덕거리고 식탁에 마주 앉은 아버지와 딸은 조용히 삶은 감자를 먹는다. 오직 소금에 찍은 감자밖에 없는 식탁이 왜 그렇게 거룩해 보이던지,,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종일 고단한 노동을 마치고 ..

열줄 哀 2018.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