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줄 哀 69

맹목적인 황혼의 역행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는 어르신이 있다. 거의 쪽방 수준인 그의 공간에는 온갖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일찌기 그와의 인연으로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있던 가족도 뿔뿔히 흩어졌다. 그에게 남은 건 방바닥에 널려있는 물건들처럼 어수선한 추억들 뿐이다. 펑생 가난하게 살았고 단촐한 삶은 팔십이 넘어도 여전하다. 그가 말했다. 어서 죽어야 할 텐데,, 늙으면 죽어야지. 폐만 끼치고 말야, 그의 목소리는 한쪽에 치워진 양은냄비처럼 덜그럭거렸다. 거동이 불편한 그를 대신해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손톱도 깎아주었다. 야윈 손이 수수깡처럼 가벼웠다. 손톱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말동무를 해주다 그의 집을 나섰다. 큰 길로 나오니 함성소리가 요란하다. 종로 거리 한쪽 방향을 노인들이 완전히 점령했다. 태극기를..

열줄 哀 2018.02.24

이 밥통아, 하는 말

배삼룡이 선전하던 전자밥통이 있었다. 그때 기술은 전기밥솥은 아직 개발이 안 되었는지 밥통이 대세였다. 밥을 따뜻하게 보관하는 것은 당시에 경이로웠다. 늘 찬밥을 먹었다. 점심은 무조건 찬밥이다. 모내기철에 들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 외에는 점심에 더운밥 먹기가 힘들었다. 밭에 일하러 나갔다가 점심을 드시러온 어머니도 가마솥 안에 담아둔 밥으로 끼니를 떼웠다. 솥 안에 있었던지 완전 찬밥은 아니고 약간 미지근한 밥이라 해야겠다. 점심 도시락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양은 사각도시락을 겨울 난로 위에 얹어 놓은 풍경도 거기서 나왔다. 으이그 이 밥통아, 학교에서 선생님은 야단치기 전에 늘 이 소리를 멎저 했다. 밥만 축내는 이 멍청아,, 이런 뜻을 내포한 말이다. 이 밥통아라는 말 욕이어도 좋..

열줄 哀 2018.01.28

외로움의 비결, 저절로 사라진 친구

西方裕之 - 男ひとり酒 西方裕之 - 雨情話 西方裕之 - 雨の奧飛驒路 西方裕之 - 女ひといろ 홀로 견디는 것,, 카톡 친구목록에서 사라졌다. 번호를 바꿨던지 탈퇴를 했던지 아니면 차단을 했던지,, 어쨌든 저절로 사라졌다. 알아서 정리해준 것이 고맙다. 저절로 사라진 친구 나를 외롭게 해주오 관계정리가 힘들다 던바의 법칙 친구의 한계는 150명, 나는 15명으로 했다. 버겁다. 혼자가 되면 보이는 것들,, 심심할 시간이 없다. 사카린 주스 내 생애 가장 맛있는 주스다. 여름날 매미도 목이 쉴 정도로 뜨거운 날에 밭일을 다녀온 어머니는 물 한바가지를 떠오라고 시켰다. 동네에 큰 우물은 두 개가 있었다. 아랫물 웃물 이렇게 불렀다. 몇 집은 집안 마당가에 우물이 있기도 했으나 친하게 지내는 관계가 아니면 사용할..

열줄 哀 2018.01.22

내 출생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큰 누나와 고모의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는 나를 저주했다. 아버지는 어머니 뱃속에 내가 들어섰을 때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미 정해진 운명처럼 당신의 병이 내가 생기고부터였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찾아오면 어머니의 배를 쳐다보며 저 새끼 나오면 바로 죽이겠다고 소리쳤다고 한다. 내가 태어났을 때 당신은 나를 죽일 기세였다. 그러나 이미 병마와 싸우다 기력이 다한 어버지는 그저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다. 아편과 노름으로 그 많던 재산 탕진한 것도 모자라 어떻게든 병마를 이겨내겠다고 빚까지 내서 발버둥을 쳤지만 당신은 내가 세상에 나온 며칠 후 세상을 떠났다. 가까스로 유복자를 면한 것이다. 어머니는 해산도 제대로 못하고 장례를 치렀다. 점 치는 것 좋..

열줄 哀 2018.01.21

혼술 속의 그 여자

내 친구는 아내를 그 여자라 불렀다. 각방을 쓴 지 한참 되었다는 말에 의아했다. 너네들 연애할 때는 죽고 못 산다고 하지 않았냐? 내 말에 그가 쓸쓸하게 웃는다. 그랬었지,, 그도 잘 나가던 때가 있었다. 식당도 잘 되고, 술집도 잘 되고, 그가 벌인 사업은 실패가 없었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 돈 잘 벌 때는 그런대로 대접을 받았는데 오십 되면서 찌글어들자 버림 받은 느낌인가 보다. 애들도 용돈 줄 때나 상대해 주지 이제는 집에서도 거들떠 보지 않고 오락이나 하던가 스마트폰 들여다 보느라 지 애비가 집에 있는지도 모른단다. 투명인간 취급이 이럴 거야.. 그가 쓸쓸하게 말했다. 그러더니 이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상심했는지 연락도 잘 안한다. 언젠가 술이라도 한 잔 사야겠다. 술로 기분을 푸는 것..

열줄 哀 2017.12.09

그대로 있는 것들이 고맙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고마울 때면 자신이 늙었다는 증거란다. 그렇더라도 나는 그대로 있는 것들이 고맙다. 어디선가 읽은 고은 시인의 글이 생각난다. 옷이란 두고두고 꺼내 입어서 그것과 함께 해로해왔다는 인생감이 서려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어느날 옷소매가 닳아서 부우옇게 보일 때 눈물이 핑 돌더란다. 그의 시 일부다. 옷소매 떨어진 것을 보면 살아왔구나! 살아왔구나! 여수 158 전문

열줄 哀 2017.12.08

노숙자의 가을

지난 봄부터였던가. 정확하게 기억은 못 하겠다. 어쨌든 꽤 오래 그를 지켜봤다. 지켜 본 게 아니라 그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매일 그곳을 지나간 것은 아니다. 지나 갈 때마다 있었다는 것은 그가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켰다는 얘기다. 그를 볼 때면 잠을 자거나 컵라면을 먹거나 신문을 보거나였다. 언제는 수염이 덥수록한 부시시한 모습이었다가 어느 날은 말끔한 차림일 때도 있었다. 컵라면을 먹는 걸 보면 그이 만의 생존 방식이 있는 모양이다. 그는 풍경이 아니라 각인이었다. 비교적 포근했던 가을 날씨가 며칠 사이 겨올로 변했다. 곧 닥칠 겨울이 걱정 없는지 평온하게 신문을 읽고 있다. 오늘은 저 신문으로 하루를 묵히기 알맞을 것이다. 모쪼록 이 겨울이 그를 비껴갔으면 한다.

열줄 哀 2017.12.02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혼자라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자위하면서도 때론 막막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막상 전화기를 누르려고 하면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것도 내가 사람 농사를 잘 짓지 못한 결과다. 그렇더라도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열줄 哀 2017.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