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줄 哀 69

치매에 관한 치명적인 소회

며칠 전에 친구 아버님이 세상을 뜨셨다. 치매 초기부터 10년 가까이 집에서 돌봄을 받다가 나중 상태가 악화되어 요양원으로 모신 지 2년 조금 지나서 돌아가신 것이다. 당신이 50대일 때 처음 뵈었다. 가끔 주말이면 친구와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친구 집에서 자고 온 적이 있다. 집이 정릉이었는데 친구 아버님은 교육자였다. 일요일 늦은 아침에 일어나 퉁퉁 부은 얼굴로 화장실에 갈 때면 당신은 거실에서 독서를 하고 계섰다. 딱 선비가 어울렸다. 언제나처럼 한치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다. 인사를 하면 돋보기 너머로 가볍게 목례를 보내고는 다시 책보기에 열중하셨다. 친구도 나처럼 5남매 막내였는데 그래서 친구와 아버지는 가족 중 비교적 살가운 관계였다. 술 담배도 안 하시고 휴일이면 등산을 하거나 가까운 산을 운..

열줄 哀 2017.11.28

사라진 검정 고무신

아주 옛날 동네에 TV가 있는 집은 대단한 권력이었다. 그 아이에게 미운털이 박히면 텔레비전을 보러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연속극은 대단한 인기였다. 수사반장, 소머즈, 타잔, 그리고 권투 중계,, 온 마을 사람들이 꽉 찬 안방은 극장과 다름아니다. 문제는 신발이다. 댓돌 위에 엉킨 신발을 바꿔 신고 가는 경우가 생긴다. 일부러 그러는 사람도 있었다. 새 고무신을 누군가 신고 가고 헌 신이 남았다. 내 신발을 찾아 댓돌 위를 헤매는 동안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그집 식구 신발 외에 한 켤레가 남았다. 약간 헐렁한 느낌이 들지만 어쩔 수 없이 신고 집으로 왔다. 이튿날 어머니는 단박에 내 신발이 바뀐 것임을 알고는 야단을 쳤다. 온 동네를 뒤지고 다니다 결국 찾았다. 아랫 동네 아무개가 신고 갔다.

열줄 哀 2016.09.02

미치겠다 이 문장

나는 냉면을 내리던 옛 제면 노동자의 무너진 어깨를 생각한다. 화상으로 가득한 요리사의 팔뚝을 떠올린다. 칼에 신경이 끊어진 어떤 도마 노동자의 손가락을 말한다. 그뿐이랴. 택시 운전사의 밥때 놓친 위장과 야근하는 이들의 무거운 눈꺼풀과 학원 마치고 조악한 삼각김밥과 컵라면 봉지를 뜯는 어린 학생의 등을 생각한다. 세상사의 저 삽화들을 떠받치는 말, 먹고살자는 희망도 좌절도 아닌 무심한 말을 입에 굴려본다. 아비들은 밥을 벌다가 죽을 것이다. 굳은살을 미처 위로받지 못하고 차가운 땅에 묻힐 것이다. 다음 세대는 다시 아비의 옷일 입고 노동을 팔러 새벽 지하철을 탈 것이다. 우리는 그 틈에서 먹고 싸고 인생을 보낸다. 이 덧없음을 어찌할 수 없어서 소주를 마시고, 먹는다는 일을 생각한다. 달리 도리 없는 ..

열줄 哀 2016.08.30

확률 낮은 어떤 죽음의 사색

# 얼마전에 신문 기사에서 읽은 내용이다. 어떤 남자가 20층 아파트에서 자살을 하기 위해 뛰어 내렸다. 그런데 마침 그때 아파트 1층 현관을 나서던 사람 머리 위로 떨어져 두 사람이 함께 숨졌다. 헉, 세상에 이런 일이,,,, 뛰어 내린 사람은 신변을 비관하다 죽기 위해 뛰어내린 것이고 깔려 죽은 사람은 살기 위해 우유를 사러 가던 사람이었다. 대체 이런 확률은 얼마쯤 되는 것일까. ## 어느 책에서 읽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살을 결심하고 방법을 연구하다 근처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뛰어 내리기로 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오토바이를 탈 때 헬멧을 쓴다. 죽기를 결심한 사람도 이 때는 안전하고 싶었던 걸까? ### 이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살아야겠다.

열줄 哀 2016.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