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줄 哀 69

이미자 해부론, 그리고 아줌마

내가 살던 마을엔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전기가 들어왔다. 전화기도 마을회관에 있는 점방에 있었고 전화가 오면 동네 스피커에서 아무개 씨 전화 왔다고 알리면 뛰어가서 받곤 했다. 우리집에 전화 걸려온 경우는 없었다. 개구쟁이들이 집에 있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틈만 나면 산으로 들로 개울로 돌아 다녔다. 프로 레슬링이 중계 되면 온 동네 아이들이 텔레비젼 있는 집으로 모여 들었다. 아이들 사이에 재밌는 소식이 돌기도 했다. 조미료 미원을 뱀가루로 만들었다고 우리는 굳게 믿었다. 가수 이미자가 죽으면 일본에서 그녀의 목을 가져간다는 말도 있었다. 동백아가씨를 멋드러지게 부르던 누나도 이 말을 믿었다. 어릴 적 소문은 지금도 유효한 것인가. 추억이 때론 믿음을 더 탄탄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최초로 본 성기..

열줄 哀 2019.12.11

생명의 가치는 얼마나 무거울까

지난 10월 31일 독도 해상에 추락해 7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긴급 환자를 수송하기 위해 출동한 소방 헬기였다. 오늘 그 분들의 영결식이 열렸고 대통령이 참석해 추도사를 했다. 영결식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과연 생명의 가치는 얼마나 무거운가다. 이번 사고는 독도 인근 해상에서 홍게잡이를 하던 어부가 손가락이 절단 되었는데 그 환자를 수송하기위해 소방 헬기가 출동했다가 환자를 태우고 이륙 직후 바다로 추락했다. 소방 대원 5명, 환자와 보호자 등은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밤 11시쯤 순식간에 사고를 당한 것이다. 네티즌들은 겨우 손가락 하나 때문에 일곱 명이 귀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 사고로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환자까지 세상을 떠났으니 과연 운명이란 있는 것일까. 만약 사고 당한 ..

열줄 哀 2019.12.10

유행가는 가을처럼

언젠가부터 뽕짝이 좋아졌다. 언젠가부터였다기보다 애초에 뽕짝 선율은 내 몸에 잠복되어 있었을 것이다. 내 누이와 장애인 형도 뽕짝을 잘 불렀다. 주로 형은 배호와 나훈아 노래를 누이는 이미자와 심수봉 노래였다. 내게 유행가는 곧 뽕짝이다. 그것도 슬픔이 뚝뚝 묻어나는 애조띤 선율이어야 한다. 슬픈 노래만이 내겐 진정한 유행가다. 그래서 김수희의 남행 열차보다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가 훨씬 내 정서와 맞는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대부분 노래방에서 분위기 망치기 딱 좋은 노래라고 할까. 그런 유행가를 문장으로 내 가슴에 심어준 책이 있다. 평생을 한국일보에서 일했던 김성우 선생의 다.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도 그가 내린 유행가의 정의는 지금도 가슴에 새겨져 있다. *내 첫 문화인 유행가는 내 인생의 곡조..

열줄 哀 2019.09.23

둥지와 방

며칠 전 부산에서 본 풍경이다. 월세가 13만이면 과연 어떤 방일까 궁금하다. 20년 전이 아니라 2019년 여름 이야기다. 여행길의 이런 풍경도 걸어야만 보인다. 보증금도 30만 원이나(?) 되니 어엿한 계약서가 필요할 것이다. 여인숙이나 쪽방 같은 월셋방은 보증금 없는 경우도 많다. 얼마 전 지인이 점심을 산다기에 따라 갔는데 한정식집이다. 간단하게 먹자는 나의 제안에도 이왕 먹는 것 좀 제대로 먹자고 지인은 막무가내다. 메뉴판을 보니 점심 특가로 1인당 1만5천 원이 제일 싸다. 2만5천 원짜리 시키려는 것을 내가 우겨 1만5천 원짜리로 주문했다. 나는 지인의 경제 사정을 잘 안다. 그래도 두 사람 밥값이 3만 원이다. 저녁 메뉴를 보니 5만 원이 제일 싸고 10만 원, 15만 원짜리도 있다. 위의..

열줄 哀 2019.09.20

단 하루의 인연

모처럼 시간을 내어 도서관에 갔다. 가까운 거리에 도서관이 있지만 자주 가지를 못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다. 서점에서 구입할 수 없는 책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은 참 유용한 곳이다. 옆자리에 어떤 중년이 앉는다. 두 명씩 마주 앉는 4인용 책상이다. 훌쩍거리고 쩝쩝거리고 텀블러 탕탕 소리내면서 놓고 온갖 소음을 남발한다. 신문을 가져오더니 신문 넘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세 시간 동안 잠시도 앉아 있질 않고 들락거린다. 오늘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을 읽기는 이미 글렀다. 한 쪽에 자리가 나서 그곳으로 옮겼다. 도서관에서는 가능한 소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충고 대신 내가 조용히 옮기는 것으로 해결했다. 단 하루의 인연, 단 몇 시간의 이웃, 이웃 간의 분쟁으로 칼부림을 하는 것도 있다. 부닥쳐도 서로 인..

열줄 哀 2019.09.01

나를 문맹으로 만드는 문장

배우 김혜수가 화려한 글리터 드레스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김혜수는 27일 오후 경기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참석했다. 이날 김혜수는 화려하게 반짝이는 보라빛 톱 드레스에 블랙 턱시도 재킷을 걸친채 레드 카펫을 밟았다. 하트 톱 드레스를 선택한 김혜수는 시원하게 드러난 네크라인에 컬러감이 돋보이는 화려한 목걸이를 착용해 포인트를 더했다. 또한 김혜수는 양 손목을 감싸는 디자인의 골드 손목 시계와 뱅글을 착용해 럭셔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혜수는 쇼트커트를 1:9 가르마로 완벽하게 넘긴 특유의 헤어스타일로 시크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냈으며, 깔끔한 피부 표현과 차분한 립 메이크업으로 우아한 룩을 완성했다. 신문 기사를 읽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열줄 哀 2019.06.27

하마터면 더 열심히 시를 읽을 뻔했다.

오래전에 어느 시인이 하는 강좌에 참여한 적이 있다. 두 시간 가까이 그 시인은 참 열심히 강의를 했다. 강의 마지막에 질문 있으면 하라고 했다. 30명 가까운 사람이 전부 조용하다. 진행을 맡았던 주최 관계자가 어떤 질문도 괜찮다고 거들었다. 그래도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민망함에 서둘러 시인이 나서 진화를 하고 강의를 마무리했다. 자기 시가 너무 좋아서 모두 할 말을 잃은 것이라고 조크를 했다. 지금 같으면 그 어색한 침묵이 싫어 나라도 나섰을 것이다. 그때는 시도 잘 몰랐지만 말주변도 참 없었다. 시인이든 작가든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때 절망스러울 것이다. 시만 쓰느라 사회 적응을 못했고 숫기가 없어서 끼리끼리 모이는 곳에 잘 가지 않는다 치자. 가족끼리 돌려 보고도 모두 꿀 먹은 벙어리다...

열줄 哀 2019.06.23

나의 불량 위생사

어릴 때 화장실이 없었다. 측간이나 변소라고 불렀다. 볼 일을 보고 손을 씻은 기억이 없다. 외출 후에 옷을 갈아 입은 적도 잠 잘 때도 외출복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아침이면 방바닥에 흙이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루 위에다 가방을 내던지고 강아지와 놀았다. 친구들과 다마치기라는 것을 했다. 다마치기 후에 그 유리 구슬을 입에 넣기도 했고 동전을 입에 넣기도 했다. 껌은 며칠씩 씹었다. 밥을 먹을 때나 잠자리에 들 때는 벽에 붙여 놨다 다음날 떼내서 다시 씹었다. 때론 깜박 잊고 그냥 잤다가 머리에 껌이 달라 붙어 애를 먹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껌이 붙은 머리카락을 어머니가 가위로 잘랐다. 나의 위생사는 이렇다. 이미자 목, 이미자가 죽으면 일본에서 그녀의 목을 가져간다고 했다. 곡마단 ..

열줄 哀 2019.06.11

사후의 흔적, 무덤 꼭 필요한가

묘비명에 관심을 둘 때가 있었다. 간결하면서 의미심장한 묘미명에 감탄하기도 했다. 무덤이 있어야 묘비명도 있다. 가끔 걷기 여행길에 무연고 무덤을 만날 때가 있다. 원래는 임자가 있었으나 조금씩 잊혀지다 버려진 무덤이다. 그런 광경을 볼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느낌이 쓸쓸함이다. 그리고 씁쓸함이 밀려온다. 예전에 내 친구의 아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연히 술이나 한잔 하자는 전화를 했다가 그날이 장모님 제삿날인데 집으로 오란다. 그녀의 사연을 알고 있기에 다른 친구 한 명과 함께 그 친구 집엘 방문했다. 친구들 중에서 그 놈이 가장 마누라 복이 많다는데는 이의가 없다. 고졸인 친구에 비해 대학을 나왔고 얼굴 예쁘고 살림도 알뜰한데다 음식 솜씨 또한 정말 좋았다. 단 하나 그것을 약점이라 하기는 뭐하나..

열줄 哀 2019.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