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줄 哀 69

내 친구 영필이

그는 군대 동기다. 다소 어리버리했다. 내가 많이 돕고 궁지에 몰리거나 왕따를 당할 위기에 닥치면 방어막이 되었다. 제대하고 몇 번 만났다. 지방 국립대에 복학한 그와 부나비처럼 방황하던 나와는 달랐다. 제주로 러시아 페째르부르그 영국 런던으로,,,, 내가 떠돌 때도 그는 광주를 지켰다. 이번 여행에서 전화를 했다. 설날 저녁 그가 반색을 하더니 택시를 타고 광주역에 15분 만에 나타났다. 고맙네. 고스톱 치다가 도망쳤어. 술자리에서 그가 카톡을 두어 번 보낸가 싶더니 처남이 왔다. 그도 고스톱 파하자 왔단다. 처남은 초면이다. 그래도 오랜 지인처럼 정겹다. 초면부터 형님이라 부르며 말을 내리란다. 광주의 쓸쓸함. 그러나 정겨운 밤은 깊어간다. 변하지 않은 친구가 고맙다. 그는 여전히 착하다. Loree..

열줄 哀 2019.02.10

먹방 유감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는데 무슨 방송에서 먹는 장면을 게속 보여준다. 세상이 온통 먹는 방송이다. 유튜브에서도 먹방이 인기라는데 먹어도 너무 먹는다. 저렇게 먹고도 사람이 견딜 수 있을까 싶다. 내가 소식을 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먹는 장면으로 넘쳐나는 방송이 유감이다. 먹어도 심하게 먹는다. 자학에 가깝다. 그런 장면을 구경하며 대리 만족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부담스럽다. 어쩔 때는 역겁기까지 한다. 먹는 것은 신성한 것이라 생각해선지 몰라도 한쪽에서 음식이 넘쳐 나고 한쪽에서 굶주리고 있다. 결식 아동, 쪽방촌의 독거 노인, 난민들 등 춥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진탕 먹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그들에게 일종의 고문이다. 예날 세월호 단식 현장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치킨 파티로 먹망을 했는데 ..

열줄 哀 2019.01.18

잘 가라 이 년, 그 연

옛날 겨울이 되면 연을 날렸지. 바람이 불어야 더 좋은 날,, 친구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근사한 방패연이었다. 나는 스스로 만들었다. 조금은 조악하지만 그래도 신났다. 방패연은 만들기 어려워 포기하고 가오리연이었다. 손이 시리면 한 손을 번갈아 호주머니에 넣지만 바람이 센 날에는 그마저 쉽지 않았다. 자칫 얼레가 풀리거나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짚가리가 쌓인 동네 모퉁이에서 팽팽한 연줄에 달린 가오리연이 높이 날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내 친구 몽연이가 옆에서 더욱 신나게 소릴 질렀다. 나보다 두 살 많은 몽연이 오빠는 동생을 때렸다. 멀리 떠났다. 몽연이도 떠났다. 연도 연줄을 끊고 멀리 떠났다. 때론 연을 찾으러 가기도 했으나 이미 논바닥에 처박혀 찢어진 연은 쓸모가 없었다. 늘 보내는 해지만..

열줄 哀 2018.12.30

나는 죄인이다

나는 어머니를 꼭 닮았다. 다른 식구들이 아버지를 닮아 비교적 잘 생겼으나 큰누나와 나는 어머니를 닮았다. 유독 내가 어머니와 판박이다. 잘 생긴 큰형과 비교해 외모가 빠진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어머니가 야속할 때도 있었다. 나를 낳은 어머니는 죄가 없다. 나는 어머니를 파먹고 살았다. 무던히도 속을 썩이고 눈물도 자주 흐르게 했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몰랐다. 왜 그렇게 모질게 말해야 했을까. 그런 말을 가슴으로 삭히며 속이 뭉그러졌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울컥 한다. 나를 세상에 내 놓은 어머니는 죄가 없건만 나로 인해 죄인처럼 살았다. 나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면서 평생 황소처럼 일만 하다 떠났다. 나는 오래도록 벌을 받을 것이다. 바람이 차가워지는 이때즘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좀더 불행해져야..

열줄 哀 2018.11.03

도배를 마치고

얼마전에 비가 엄청 내린 날 저녁에 돌아오니 빗물이 방으로 들이닥쳐 창문 아래 벽지가 흠뻑 젖었다. 늘 외출 전에 창문을 단속한다는 게 깜박했다. 두 개의 창문을 3 센티 정도만 열어 놓고 나가는데 활짝 열린 창문에 장대비가 들이친 것이다. 요즘 비가 이렇게 요란하다. 물폭탄을 퍼붓듯이 내린다. 도배를 했다. 가능한 있는 대로 살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했다. 도배를 하고 나니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신문으로 도배를 하기도 했다. 한문이 많아서 다 읽지는 못해도 활자와의 친분은 그때 쌓았다. 심심할 때 벽지에 실린 기사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파리똥이 까맣게 내려 앉은 천장 벽지에 매주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초겨울쯤으로 기억한다. 가난은 곳곳에 스며있다.

열줄 哀 2018.09.20

아련한 설탕물의 추억

미증유의 폭염이 계속되는 요즘이다. 정말 삶아 죽일 듯이 덥다는 말이 실감 난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선풍기도 없던 시절이 있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쯤인가. 호박꽃이 처음 피기 시작할 무렵일 것이다. 엄마는 안방 창호지 문 절반 아랫쪽을 띁어내고 모기장을 쳤다. 그 무렵 오일장에 나가 여름옷과 함께 부채도 몇 장 사왔다. 이것으로 엄마의 여름나기 준비는 끝이다. 이때부터 밤이면 방문을 열고 드나들 때마다 행동이 빨라져야 한다. 문을 열고 조금만 늦장을 부리면 모기 들어온다는 엄마의 지청구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모기향이 없던 시절이라 마당에 모기불을 피워야 했다. 밤에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면 달려드는 모기를 잡느라 엉덩이를 철썩 때리면서 볼 일을 봤다. 그때는 화장실이라는 말이 없었고 변소였다. 학교..

열줄 哀 2018.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