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景 42

달동네의 강아지

홍제동 개미 마을에 갔다가 외딴집 옆에 묶여있는 개를 발견했다. 처음엔 엄청 짖더니 내가 눈길을 보내자 경계를 풀고 꼬리를 치기 시작한다. 반갑다고 어찌나 설레발을 치는지 쇠줄이 끊어질 지경이다. 개 보면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잠시 동무를 해줬다. 내 손이 닿자 배를 뒤집으며 까무러친다. 무척 외로웠나 보다. 가려고 하자 더 있다 가라면서 손등을 연신 핥는다. 개 좋아하는 것도 천성이다.

다섯 景 2022.04.12

담장 밖이 궁금한 봄꽃

경복궁 담장은 걷기에 참 좋은 길이다. 너무나 화창한 봄날 벚꽃이 만개했다. 요즘 우리 궁궐에서 벚꽃은 보기 힘들다. 경복궁뿐 아니라 덕수궁, 창덕궁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봄이면 창경궁 벚꽃놀이가 아이들의 자랑이었다고 한다. 일본 색을 지운다는 이유로 궁궐에 있는 벚꽃이 사라졌다. 봄꽃의 대표인데도 벚꽃이 일본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일종의 콤플렉스일 수 있다. 꽃은 꽃이다. 그럼 입법부의 상징인 여의도 국회 벚꽃은 어떻게 볼 것인가. 아무리 봄꽃이 만발해도 벚꽃을 뺀다면 봄꽃은 허전하다. 어쨌든 봄이면 나는 벚꽃으로 위로를 받는다. 예전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고단한 서울살이 노동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하루쯤 김밥 싸들고 창경원으로 나들이 간 가족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거기다 사진 한..

다섯 景 2022.04.07

어느 건축물을 찾아

요즘 강서구 마곡동을 가면 요지경임을 느낀다. 1990년대만 해도 이곳은 군데군데 논이 있을 정도로 시골 풍경 물씬 났는데 격세지감을 느낀다. 마곡 지구 갔다가 멀리서 보이는 이색적인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서 보니 KOLON One & Only Tower다. 코오롱 그룹은 한국 나일론의 시초 회사다. 코오롱이란 회사 이름도 코리아+나일론(Korea+Nylon)의 합성어다. 인류 문화에 나이론은 가히 혁명이었다. 지금도 그 쓰임은 곳곳에서 약방의 감초다. 어렸을 때 나이롱 바지가 유행이었다. 값싸고 질긴 반면 불에 닿으면 금방 구멍이 나는 단점이 있다. 이 건물은 코오롱이 현대 공법을 동원해 지은 거라고 한다. 독특한 외양뿐 아니라 첨단 소재로 만들었다니 높이 살 만하지 않은가. 안에 들어가 ..

다섯 景 2022.04.05

뒤죽박죽 일요일의 풍경 조각

가끔 전통 시장을 간다. 생선 가게 앞에서 두 사람이 낑낑거리며 대형 상자를 내린다. 와! 이렇게 큰 생선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다. 딱 사람 크기다. 생선 대신 내가 저 관처럼 생긴 상자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전통 시장에서 내가 사는 건 과일이 제일 많다. 가끔 닭강정이나 꽈배기를 살 때도 있다. 오랜 기간 가는 단골 떡집에서 시루떡을 사기도 한다. 식성도 바뀌는지 나이 먹으면서 떡을 좋아하게 되었다. 예전에 그 사람은 늘 사랑을 확인했다. 가끔 내 표정을 보며 물었다.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건가요?" 그냥 웃지만 말고 빈말이라도 그렇다고 할 걸 그랬다. 사랑 점검의 마지막 대사는 늘 똑 같았다. "사랑에도 보증수표가 필요한 거예요." 내 사랑은 보증금은커녕 공수표였다. "개새끼" 그 사람이 마지막..

다섯 景 2022.02.27

방이거나 관이거나

입춘 지난 지가 한참인데 여전히 겨울 날씨다. 오늘은 바람이 불어 더욱 춥게 느껴졌다. 봄은 아직 멀었나 보다. 추운 바람이 불수록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진다. 건널목 앞에서 막 빨간불로 바꼈다. 이곳은 다음 파란불까지 오래 기다려야 한다. 지하도를 통해 건너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네모난 것을 무심코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왔다. 누군가의 방이다. 이것은 집이 아니라 방이다. 매일 헐었다 다시 만드는 방이다. 안에 누구 있어요? 부르고 싶어졌으나 말았다. 스마트폰에 몇 장 담았다. 지나가는 여자는 나를 구청에서 나온 사람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술냄새가 나지 않는 걸 보면 모범 시민이다. 막 짓고 들어갔는지 주변도 깨끗하다.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리는 행복이 당..

다섯 景 2022.02.11

나이롱 바지와 플라스틱 바구니

예전에 나이롱 바지를 입었던 시절이 있었다. 워낙 개구쟁이여서 툭 하면 바지 무릎이 헤지곤 했는데 나이론 바지는 질겼다. 나이롱 바지가 질긴 반면에 불에 약했다. 불에 슬쩍 닿아도 오그라들거나 구멍이 났다. 지금은 환경 오염의 주범이지만 플라스틱 출현은 인류 문명에 큰 변화를 줬다. 바구니, 바가지, 다라이 등, 플라스틱은 생활용품에도 변혁이었다. 예전에 그 귀한(?) 플라스틱 바구니를 불에 올렸다가 한쪽이 녹아 찌그러졌다. 어머니에게 빗자루로 엄청 맞았다. 없는 집안에 플라스틱 바구니는 큰 살림이었을 터, 바구니 한쪽을 불에 태운 것이다. 깜짝 놀라 녹아 내린 곳을 만졌다가 손가락을 데었다. 어머닌 아들 손가락이 데인 것보다 구멍 나고 찌그러져 못 쓰게 된 바구니가 더 아까웠다. 오래 전 이야기다.

다섯 景 2020.10.04

날아라, 이스타 항공

제주항공이 결국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했다고 한다. 하긴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다 항공운항증명 정지까지 되었으니 비행기 양쪽 날개를 다 잃은 셈이다. 이런 빚더미 항공사를 덜컥 인수할 기업은 없을 것이다. 이미 이스타항공은 지난 3월 국적항공사 중 처음으로 국내 노선까지 모든 운항을 멈춘 상태였다. 코로나 장기화로 가장 타격을 받은 업종이 항공 업계다. 여행사 또한 완전 밑바닥 경기를 경험하고 있다. 반면 택배사와 마스크 업체는 호황을 누린다. 저가 항공사들이 앞다퉈 운항 노선을 늘리며 훨훨 날았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1년 전이다. 작년 가을까지도 제주 여행을 할 때면 이스타항공을 자주 이용했다. 나름 언제 어떻게 해야 좀 더 저렴한 표를 구하는지 방법을 터득했다. 창가 좌석에 앉게 되면 창 밖 풍경을 ..

다섯 景 2020.07.23

시집 사기 좋은 책방

책을 사기 위해 동네 서점을 많이 이용한다. 지역 서점을 살리자는 생각으로 실천하는 편이다. 문제는 책이 다양하지를 않다는 것이다. 잘 팔리는 책 위주라 사고 싶은 책을 못 사는 경우가 많다. 제목만 보고 대충 사는 경우는 없다. 꼭 내용물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책이 진열될수록 정보 입수가 쉽다. 대형 서점은 책 정보를 얻기에 좋다. 오래 뒤적거리며 머물러도 눈치 볼 필요가 없다. 동네 서점 같으면 손님이 딱 나 한 사람이거나 한 두명인 경우가 많아 구경만 하고 나오면 뒤통수가 가렵다. 종로는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내 문화의 터전이었다. 종각 부근 빠이롯트 건물 옆에 있던 전통의 종로서적도 사라지고 10대부터 자주 갔던 음반점도 흔적이 없다. 그래도 도심에 이런 대형 서점이 ..

다섯 景 2019.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