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景 42

동백 다방, 그 쓸쓸함의 기억

동백 다방이 어디에 있는지는 묻지 마라. 이 다방은 내 마음 속에 영원히 자리 하고 있으니까. 내가 다방을 처음 간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못한다. 아마도 스무 살 무렵 학교 앞 음악 다방이었겠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동백 다방은 군복무를 했던 서해안의 작은 포구에 있었다. 군기 바짝 든 신입병 시절이야 엄두를 못 냈지만 말년병 때는 자주 머물던 곳이었다.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들어갈 때나 누가 면회를 왔을 때도 이곳이 만남의 장소였다. 홍마담과 미스 양이 생각난다. 여러 명의 레지들이 있다가 떠났지만 다른 사람은 별 기억이 없다. 당시의 다방 레지들은 보통 6개월 정도 머물다 떠났다. 미스 양은 1년 가까이 머물렀을 것이다. 유독 나한테 살갑게 대해주던 미스 양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장소였지만 마을..

다섯 景 2019.05.22

빨간 양배추와 양파는 어떤 꽃을 피우는가

올레길을 걷다가 노란 꽃이 핀 밭이 보였다. 이미 수확을 끝낸 버려진 밭이었다. 들꽃은 아닌 것 같고 호기심에 밭으로 내려갔다. 벌도 보이고 은은한 향기가 난다. 궁금증은 금방 풀린다. 밑부분에 빨간 양배추가 받침처럼 놓여 있었다. 적채라고 부르는 양배추 일종이다. 수확을 포기하고 내버려 두니 꽃대가 올라와서 이렇게 꽃을 피운 것이다. 양배추는 밥상에 오르는 역할을 포기 했을 때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조금 더 가다 보니 이번에 양파꽃이 하얗게 피었다. 뽑아 보질 않았으니 양파가 아닌 파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두 꽃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양파도 제 역할에서 벗어 나서야 꽃을 피웠다. 양파꽃에 양파 향이 나고 적채 꽃에 양배추 향기가 났다. 화려하진 않지만 귀한 꽃을 본 날이었다.

다섯 景 2019.05.22

찔레꽃이 있는 하루

유행가에서나 듣던 찔레꽃이 길에 지천으로 피었다. 어릴 적에는 순을 따서 먹기도 했지만 딱히 찔레꽃에 대한 추억은 없다. 장사익은 찔레꽃 향기가 슬프다고 노래 했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일상에서 그 향기에 슬퍼할 겨를이나 있었겠는가. 슬픔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슬픔보다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찔레꽃이다. 향기 품은 바람은 덤이다.

다섯 景 2019.05.18

바람 타는 감자꽃

감자 하면 강원도를 떠올리는데 제주에도 감자밭이 많았다. 감자꽃이 주목 받는 꽃은 아니다. 호박꽃과 함께 무시 당하는 꽃이라고 해도 되겠다. 가던 길 멈추고 바람 타는 감자꽃을 바라보고 섰노라니 권태응 선생의 유명한 동시가 생각난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자주꽃을 보자 파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정말 자주 감자가 맞는지,,

다섯 景 2019.05.03

바람이 부르는 것들

바람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부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람이 났다. 바람을 맞았다. 바람이 들었다. 제주 올레길에는 시종 바람이 불었다. 걷는 동안 좋은 뜻으로 바람과 함께 했다. 맞기도 하고 들기도 하고, 호기심에 바람이 나면 주체할 수 없이 공부가 된다. 이 풍경들은 바람이 잠시 쉴 때 담은 것이다. 이럴 때를 바람이 잔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바람 잘 날 없던 내 인생에 잠시 평화가 깃들 때도 지금이다. 내 마음에서 바람이 자고 있다.

다섯 景 2019.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