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景 42

모란시장 강아지들의 외출

성남 모란시장을 갔다. 딱히 뭐를 사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외출 삼아 간 것이다. 다른 곳에 없는 것이라면 몰라도 과일, 채소는 우리 동네보다 비싸다. 어쨌든 시장에 오면 활기가 넘쳐 저절로 생기가 돈다. 시장이야말로 사람 사는 풍경의 가장 기초적인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선거철 되면 출마자들이 시장에 나와 상인도 만나고 어묵도 먹고 하는 모양이다. 언제가부터 전통 시장은 거의 안 가게 된다. 예전에 내가 사는 신촌에도 전통시장이 있었다. 시장도 없어지고 강화 버스 터미널도 사라지고 캬바레도 없어졌다. 모란 시장은 다른 곳에 없는 동물 시장이 있다. 닭, 오리는 물론이고 토끼, 개, 고양이도 판다. 상자 안에 막 젖을 뗀 강아지들이 꼬물거리고 있다. 그 중 호기심이 아주 많은 강아지가 자꾸 밖으로 ..

다섯 景 2018.05.14

당당한 혼밥

며칠 전의 일이다. 지인이 오후 두 시가 휠씬 지났는데 여태 밥을 먹지 못했다고 같이 가자고 한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 밥 먹기가 부담스럽다는 거다. 둘이 가서 한 사람만 밥을 먹는 것도 눈치가 보이지만 혼잡한 시간이 아니라 함께 들어갔다. 하긴 예전에 그런 사람이 있긴 했다. 구내식당에서도 혼자 밥을 먹지 않았다. 한번은 물었더니 남이 보고 얼마나 인간성이 나쁘면 혼자 밥을 먹나 생각할까 그렇단다. 지나친 주변 인식이다. 당당한 혼밥이 필요하다. 혼자 영화 보러 갈 줄도 알아야 하고 혼자 밥 먹을 줄도 알아야 한다. 혼술은 좀 그렇더라도 혼밥까지 주변 눈치를 볼 필요가 있을까.

다섯 景 2018.05.09

봄날의 아름다운 도반

마곡사에 갔다가 아름다운 도반을 보았다. 눈부시게 빛나는 봄날 나들이를 나온 것일까. 하안거에 들기 전에 세상 바깥 구경이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색 연등을 바라보고 있는데 내 옆을 지나가는 스님의 대화가 정겹다. 성직자의 길은 언제나 거룩하면서 고달프다. 더구나 속세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비구승에게는 더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조계종 추태를 보면 독신으로 무소유의 삶을 지향하는 불교의 가르침에 어긋난 일이기도 하다. 그 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재물이나 감투에 욕심을 내는 승려들이 많다. 뭐 종교계라고 좋은 사람들만 있겠는가. 어떤 철 없는(?) 시인은 자기가 만난 사람은 모두가 아름다웠다고 노래 했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던가. 문학적 표현임을 알면서도 동의가 안 된다. 세..

다섯 景 2018.05.07

짧은 만남, 긴 기다림

한때는 내년 봄에 피는 꽃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색다르다. 더디게 온다는 생각과 함께 지는 꽃을 바라보는 마음도 다르게 느낀다. 저 꽃 작년에도 피었는데,, 봄이면 늘 가던 곳에서 다시 핀 꽃을 보면 내 삶이 더욱 소중해 보인다. 바람만 살짝 불어도 꽃이 진다. 꽃 지는 중에 봄소풍을 나온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소리가 더욱 싱스럽다. 노란 병아리들이 이럴까.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아이들은 병아리처럼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한 무리 노인들이 보인다. 저들은 작년에도 왔을 게 분명하다. 지는 꽃을 보며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소풍 - 조찬용 아이들이 성벽 길을 줄지어 소풍을 간다 두 노인네 느티나무 아래에서 장기를 두며 아이들을 바라..

다섯 景 2018.04.12

장국영의 눈물

세상에는 영화 같은 죽음이 있다. 화려한 조명을 받던 스타의 죽음이 자살이라면 완전 영화다. 장국영이 그랬다. 어느덧 그가 세상을 떠난 지가 15년이 되었다. 사람이 죽고 나는 거야 늘 있는 일이지만 그의 죽음은 유난히 놀라움을 주었다. 15년 전 오늘 그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는 만우절이었기에 더욱 영화적이었다. 진짜 장국영이 죽은 거 맞아? 그 날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그는 이 날을 일부러 선택했을까. 장국영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만능 연예인이었다. 가수, 모델, 배우 등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나는 오직 그를 영화배우로 기억한다. 아비정전에서 처음 봤고 이후 동사서독, 패왕별희, 해피투게더, 이도공간 등이다. 아비정전에서는 눈여겨 보지 않았는데 패왕별희를 보고 장국영을 다시 보게 되었다...

다섯 景 2018.04.01

노년의 고단함

흐르는 세월 따라 누구나 늙게 마련이지만 나이 먹는 슬픔에 비할까. 길을 걷다가 걸음걸이가 불편한 어른을 보면 유심히 보게 된다. 저 분도 막 피운 꽃처럼 싱그럽고 화사한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허리까지 굽었다. 무릎이 아프신지 지팡이에 의지한 발걸음이 위태하기 짝이 없다. 몇 걸음 가다가 멈춰 서고 또 몇 걸음 옮기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앉기도 힘들고 서 있기도 힘들고 걷기는 더 힘들고,, 저 어르신의 현재가 딱 그렇다. 노년의 고달픔이 슬프다. 교회에서 빵과 우유를 나눠준다기에 가는 길이다. 거기다 천 원짜리 지폐도 한 장씩 받을 수 있단다. 작년까지 5백 원짜리 동전을 나눠줬는데 올해부터 천 원으로 올랐단다. 천천히 멀어지는 노인을 보며 저 걸음이 조금만 수월했으면 했다.

다섯 景 2018.02.21

연말에 지난 가을의 흔적을 보다

앙뜨완느 블랑샤르(Antoine Blanchard)는 파리의 거리 풍경을 지속적으로 그린 화가다. 1910년에 태어나 1960년대를 전후로 왕성하게 그림을 그렸다. 딱 보면 누구 그림인지를 알 수 있는 특징 있는 화가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작품마다 비슷한 풍경이면서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림에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 중 특히 비 내린 가을 풍경을 좋아한다. 언제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겨울에 그의 그림을 보다가 지난 가을의 흔적을 발견한다. 나의 추억에도 그런 흔적이 있을 것이다. 누가 그랬다. 과거를 돌아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신이 나이 먹었다는 증거라고,, 그런들 어떠리. 자꾸 지나간 날들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걸 어쩌겠는가. 심리..

다섯 景 2017.12.28

여름 날의 옆 동네

장마가 왔던가. 아니 잠깐 소강 상태다. 옆 동네를 잠시 걷는다. 그래 봤자 걸어서 15분 거리다. 익숙해서, 아니 낯설지 않아서 편안하다. 골목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인사를 건네고 싶은 정겨움이 묻어 있다. 이 동네는 아직도 반지하 방이 있다. 아파트에 살기엔 아직 가난하다. 아직 가난함이 아주 가난함으로 굳어질지 모른다. 그래도 저 꽃들 앞에서 희망을 기른다. 장마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빨래걸이가 골목으로 나왔다. 진정한 행복지수가 보인다. 여기 사람이 산다. 아주 인간적으로,,

다섯 景 2017.07.14

여행자의 낮잠

누군가 그랬다. 영국 살면 원 없이 여행 다니겠네. 볼 게 얼마나 많은 나라인데,, 맞다. 영국엔 볼 게 많아 여행하기 좋은 나라다. 그러나 한국에 있을 때처럼 영국에서도 일 하느라 여행을 많이 하지 못한다. 그래도 하루에 다녀 올 수 있는 근거리 여행을 가끔 했다. 나와 같은 열에 있는 기차 안에 한 남자가 앉이 있다. 나처럼 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이다. 공교롭게 그가 좌석 네 개를 차지하고 있고 내가 앉은 네 개 좌석도 나 혼자다. 승객이 별로 많지 않은 탓에 어쩌다가 눈인사를 나눴다. 음료를 파는 작은 수레가 지나간다. 그는 홍차를 시키고 나는 커피를 주문했다. 차를 마시던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대화가 시작 되었다. 맞춰 보라고 했더니 일본 아니면 중국인처럼 보인다..

다섯 景 2016.07.25

런던의 이동 화장실

영국에 살면서 느낀 것이 화장실 문화가 너무 차이나는 점이다. 한국은 공공 장소나 지하철 역마다 공중 화장실이 있어 화장실을 못 찾는 일이 없다. 영국에서 화장실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심지어 도서관에도 국립도서관 빼고는 동네 도서관은 화장실이 없다. 천상 볼 일을 보려면 근처 대중술집인 펍이나 맥도날드 매장에 손님인 척 들어가 슬쩍 볼 일을 보고 나오는 방법밖에 없다. 이것마저 없으면 커피숍에 들어가 한 잔 주문하고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세계적인 관광 도시 런던의 뒷골목은 지린내가 난다. 술을 마시면 당연히 소변이 자주 마렵다. 화장실이 없으니 뒷골목 으슥한 곳에서 볼 일을 본다. 그것을 막기 위해 주말이면 런던 도심에 이동 화장실이 놓인다. 처음엔 사람들 분주히 지나다니는데 볼 일을 보는 것이 ..

다섯 景 201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