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지난 지가 한참인데 여전히 겨울 날씨다. 오늘은 바람이 불어 더욱 춥게 느껴졌다. 봄은 아직 멀었나 보다. 추운 바람이 불수록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진다.
건널목 앞에서 막 빨간불로 바꼈다. 이곳은 다음 파란불까지 오래 기다려야 한다. 지하도를 통해 건너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네모난 것을 무심코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왔다. 누군가의 방이다.
이것은 집이 아니라 방이다. 매일 헐었다 다시 만드는 방이다. 안에 누구 있어요? 부르고 싶어졌으나 말았다. 스마트폰에 몇 장 담았다. 지나가는 여자는 나를 구청에서 나온 사람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술냄새가 나지 않는 걸 보면 모범 시민이다. 막 짓고 들어갔는지 주변도 깨끗하다.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리는 행복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까봐 미안하다.
한쪽에는 누군가 방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갖다 놨다. 못도 망치도 필요 없는 무공해 집이다.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밥을 먹으로 갔을까. 아니면 재료를 더 모으기 위해 거리를 걷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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