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 정명원

마루안 2021. 11. 12. 23:06

 

 

 

읽고 나서 마음이 아주 따뜻해지는 책이다. 스스로 외곽주의자라 말하는 현직 검사가 쓴 책이다. 요즘 유독 검사라는 직종에 대해 비호감을 갖고 있던 차에 이 책이 검사에 대한 비호감 정서를 조금 정화시켰다 할까.

 

애초에 검사에 대해 좋은 인상이 아닌데 요즘 고발사주로 수사 대상이 된 김웅 의원을 보자. 검사 출신의 보수당 국회의원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이 사건으로 극강 비호감이 되었다. 예전에 그의 책 <검사내전>을 읽을 때만 해도 비교적 호감이었다.

 

김웅이 검사 옷을 벗고 보수당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존의 보수당 사람과는 다를 줄 알았다. 얼마 전 식당에서 친구와 밥을 먹는데 TV 뉴스에 김웅 의원이 나와 고발사주 사건 해명을 했다.

 

밥 먹던 친구 왈 "밥맛 떨어지게 스리, 이제 보이 절마 완전 양아치네." 가능한 공공장소에서 정치적 발언 하지 않기에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딱 내 생각이 그랬다. 김웅처럼 법을 전공한 사람은 이렇게 빠져 나갈 구멍을 안다. 김웅은 사람이 이렇게 비겁할 수 있구나를 제대로 보여 주며 내 뒤통수를 쳤다.

 

이제 책 이야기 하자. 저자 정명원은 여자 검사다. 선입견인지 몰라도 처음엔 남자인 줄 알았다. 검사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갖고 있듯이 이렇게 선입견은 무섭다. 어쨌든 섬세한 이 검사 덕에 모처럼 흐뭇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그는 기소보다 불기소를 더 잘하는 검사라고 한다. 처벌 받아 마땅한 이유를 밝히고 더 엄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보다 어떤 일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나 처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에서 편한함을 느꼈다고 한다.

 

법을 다루는 매정한 공간에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감동적이다. 책을 읽으며 이 사람 글을 아주 잘 쓴다 싶었는데 검사가 원래 글을 많이 읽는 직업이란다. 딱딱한 법률 용어가 대부분이겠지만 민원인이 쓴 글도 많이 읽는다.

 

고소장, 탄원서, 진정서, 의견서 등 읽을 종목도 참 많다. 아주 문학적인 책 제목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이 어떻게 정해졌는가 했더니 검사가 민원인의 호소를 자주 접한다고 한다. 평생 검사 한 번 마주 한 적 없는 나로서는 생소하다.

 

범죄 경력 조회라는 것이 있단다. 흔히 알고 있는 전과 기록이다. 범죄 경력 조회만 보아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단다. 재개발 철거촌 동네에서 보일러를 훔친 어떤 노인 이야기를 하면서 들려준 말이다.

 

아뭏튼 검사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은 내게 이 책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좋은 머리로 시험 잘 쳐서 검사가 되었지만 나쁜 쪽에 머리를 쓰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도 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