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 정은정

마루안 2021. 12. 2. 21:31

 

 

 

지금 시대와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이 책 제목이 아니라도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처럼 다정하면서 한편 예리하게 박히는 문구가 있을까. 이 상투적인 제목을 단 책 속에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이 깊이 있게 담겼다.

 

그동안 신문에 쓴 칼럼을 모아 손질해 한 권으로 엮었다. 그래서 글 꼭지가 길지 않아 틈틈히 읽기에 좋은 책이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모습이 사라졌다.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가 된 세상이라 책 읽는 사람을 보면 되레 낯설다.

 

이 책은 어느 대목을 읽어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짧지만 강열한 인상을 주는 글이라 지하철에서 읽기에 딱이다. 달달하면서 짧은 글은 SNS에 넘쳐난다. 그런 문장일수록 금방 휘발이 되는 반면 종이 책에서 읽은 문장은 오래 남는다.

 

한 문장 소개하자면 <김밥으로 오신 하느님>이라는 꼭지에 이런 글이 있다. 출장을 다니면 김밥으로 끼니를 한다. 두 사람 자리를 혼자 차지하는 게 미안해서 간단한 식사 해결은 김밥 집이 적당하다. 김밥천국은 보통 천국, 김천으로 불린다.

 

예전엔 김밥이 소풍 때나 먹던 귀한 음식이었는데 지금은 가장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끼니다. 일부 김밥은 프리미엄이라는 명목으로 5천원이 넘는 것도 있긴 하다. 저자는 김밥 집을 사회학적으로 들여다 본다.

 

김밥천국이 24시간 영업에서 코로나로 영업을 제한하면서 대리운전이나 야간 근무자들의 식사 공간이 사라졌다. 김밥집은 그들에게 귀한 장소다. 삶이 지옥인 세상에서 누군가에겐 사 먹는 김밥 한 줄이 하느님이고 천국이다.

 

<그들이 우릴 먹여 살린다>라는 꼭지엔 이런 문장이 가슴에 깊이 박힌다. 코로나로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오질 못해 농촌이 난감하다. 대부분 그들 일손으로 굴러가는 현실에서 해외 유입을 봉쇄하자고 하는 말을 쉽게 하지만 그 부작용이 만만찮다.

 

농촌 지역 경제도 그들 때문에 돌아간다. 일도 그들이 하지만 시골 수퍼나 편의점도 외국인 노동자가 주요 고객이다. 노인들보다 그들이 지역 소비를 한다. 축산 농장이든 채소 농장이든 외국인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내국인이 대신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나 비싸다. 당연 농산물 가격이 오른다. 화장실도 없는 농막 같은 콘테이너 박스 건물에서 살면서 일할 내국인은 없다. 이제 솔직히 말하자.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우릴 먹여 살리고 있다.

 

배움이란 학교에서만이 아니다. 학교 떠나면 천상 배움은 책을 통해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훨씬 진보적인 사고가 생길 수밖에 없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은 그들에게도 똑같이 해야 한다. 사고 폭이 넓어지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