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마음 가는 시집 만나기가 힘들다. 그런 와중에 눈에 번쩍 들어오는 시집을 만났다. 우혁의 첫 시집 <오늘은 밤이 온다>다. 진공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이렇게 공감 가는 시집을 만나면 떨리면서 기쁘다.
내친 김에 반복해서 읽었다. 우혁 시인은 1970년 출생으로 한국외대에서 인도어를 전공했다. 인도어가 어떤 언어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거대한 인구 대국 인도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은 듯하다.
삶창에서 나오는 시집은 가능한 읽으려고 하는 편인데 이 생소한 이름이 박힌 시집을 별 기대하지 않고 들췄다가 제대로 빨려 들어갔다. 우혁이라는 짧아서 외우기 힘든 이름이 본명은 아닌 것 같고 어쨌든 이 시인을 마음에 담는다.
*절벽 같은 마음으로 길을 핥아본다
나는 길의 미식가
누추하고 남루한 사연은 좀 접자
내가 닿아야 그제야 길이 되는 거고
모질게 뜯어낸 마음 한 자락이
길 위에 꽃잎처럼 흩어지는 거라
*시/ 발바닥/ 일부
나는 이 시에 제대로 꽂혔다. 여러 번 읽어도 지루하지가 않은 시다. 이 외에도 독자의 가슴에 문신 그리듯 새김을 주는 시가 여럿 실렸다. 칼자국, 잇자국 등 실제 이런 어휘가 자주 등장한다. 시인은 살 위에 쓴 시가 상처였음을 고백한다.
*입구는 막혀 있지만
출구는 어딘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살아가는 일, 숨는 일, 숨 참는 일
비슷한 일과였다.
*시/ 누군가 지하실에 내려갔다/ 끝 부문
*얼마 남지 않은 발을 붙일 곳들은
누구의 자리이거나
망각 속에서 흐릿해지는 먼 세상
*시/ 잇자국/ 일부
*가끔씩 늙고 가끔씩 절망하네
많은 시간 바닥을
찾으려고
깊게 숨을 쉬다
허공에 깊은 우물을 파네
*시/ 등 굽은 사내/ 일부
잔잔한 울림과 긴 여운이 남는 싯구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시집 후기로 지나친 장광설 늘어 놓지 않으리라 했는데 또 오바를 했다. 시인의 마음을 제대로 훔친 까닭이다. 그 마음을 온전히 표현한 시를 찾아 올린다.
고통 - 우혁
나를 닮은 얼굴이
한쪽으로
하나의 느낌으로
뾰족해진다
나를 어루만질
손과 혀가
스스로를 베곤 한다
다치는 것들은
모두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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