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가장의 근심 - 문광훈

제목에 끌려 집어든 책인데 제대로 골랐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버지 역할을 안내하거나 고단한 중년의 외로움을 위로하는 책은 아니다. 목록을 보면 지루한 것 못 견디는 나같은 무식한 사람 주눅 들기 충분한데 생각 외로 재밌게 읽힌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없는 교양을 한 바가지 실컷 마신 기분에 배가 부른 느낌이다. 세상이 고달프거나 울적할 때면 술과 여자로 푸는 사람이 있는 반면 팍팍한 삶을 견디면서 독서와 글쓰기로 헐렁한 내면을 단속하는 사람이 있다. 후자에 속하는 문광훈 선생의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삶이 풍성한 인생인지를 깨닫게 한다. 저자의 진솔한 내면을 알 수 있는 정갈한 문장이 읽는 이를 더욱 진지하게 만든다. 책 제목 은 카프가의 글 제목에서 따왔다. 그 대목이 참 인상적인데 저자의 ..

네줄 冊 2017.05.28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 마우리시오 라부페티

남미의 우루과이 대통령에 관한 책이다. 남미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두 나라의 면적은 남미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그 두 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 나라가 우루과이다. 미국인에게 한국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태반이 잘 모르고 심지어 아프리카 북부나 중동 지역을 가르키는 사람도 여럿이었단다. 하물며 한국에서 우루과이를 물어보면 정확하게 위치를 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안다 해도 축구의 열정이 대단한 나라 정도겠다. 그런데 갑자기 가 대통령에 당선 되면서 우루과이에 관심이 생겼다. 10여년 전에 브라질의 대통령 이후로 남미의 정치가로는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워낙 남미가 미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고 미국에 찍힌 나라는 온갖 경제 제재와 방해공작에 시달렸고 미국 말을 안 들으면 정권 유지가 힘들 정도..

네줄 冊 2017.05.25

대리사회 - 김민섭

어쩌다 대학 강단에 섰던 젊은 교수가 대리운전을 시작했을까. 책 입구에서 그 이유를 절절하게 밝히는 대목에 공감이 갔다. 많은 정보로부터 대학 강의 절반을 담담하는 시간 강사들이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에 고통 받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한번 정교수가 되면 정년까지 보장이 되는 철밥통을 소유할 수 있기에 교수에 목을 매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어느 분야든 들여다 보면 불합리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기에 교수 사회라고 공정하기만 하겠는가. 존경 받는 교수도 있지만 철밥통을 믿고 연구를 게을리하는 함량미달의 교수가 부지기수다. 대리기사를 하면서 저자는 깨닫는다. 이 사회가 많은 부분에서 남의 운전석에 앉아 있다는 것을,,,, 돈만 주면 술 취한 자신을 대신해 집앞까지 편안히 차를 주차해 주는 대리기사는 우리 사..

네줄 冊 2017.05.16

할배의 탄생 - 최현숙

이 책은 두 노인의 인생을 말하고 있다. 초등학교 겨우 나온 저학력에다 평생 육체 노동으로 세상을 떠돌며 밥벌이를 한 육체 노동자 이야기다. 노인들이 직접 쓴 글이 아니라 노인이 구술한 것을 저자 최현숙이 구술을 다듬어 문장으로 옮긴 것이다. 이런 책은 저자에 먼저 관심이 간다. 책 날개에 실린 저자 소개는 이렇다. 사춘기와 함께 시작된 천형 같던 액취증은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갖게 해준 선물이었다. 아버지와 싸우며 모든 사회적 통념과 가치관에 의심을 품을 수 있었다. 나침반 없는 방황과 혼돈의 와중에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 결혼을 통해 가난으로 들어섰고, 예수와 충돌하며 가난을 선택했다. 여성과 사랑하며 더 큰 자유를 얻었다. 결혼과 출산 뒤 신앙적 고민 속에 1987년 천주교 사회운동을 시작으로 운동권..

네줄 冊 2017.04.04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 이광수, 최희철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다소 거창한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사진 에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나의 사진을 놓고 사진을 찍은 사람의 해설 뒤에 시인이 나름의 시각으로 그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독자는 곶감 빼먹듯 사진과 바로 옆에 차례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해설을 읽으면 된다. 거기다 독자가 자신이 사진을 본 느낌까지 보태면 삼박자의 완성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이 크고 화려하진 않다. 그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진을 아니다. 인도의 풍경과 인물을 담은 스냅 사진은 꽤나 우울하다. 사진 책 하면 대부분 판형이 크고 무겁고 화려하고 비싸다. 거기다 철학 책 하면 너무 고리타분하거나 어렵다. 이 책을 철학적인 사진 해설집이라고 한다면 두 가지에 다 해당된다. 그러나 책은 사진..

네줄 冊 2017.04.02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 목수정

재불 작가 목수정 선생의 산문집이다. 한국의 문화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영어권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데 홍세화 선생 이후 프랑스에 체류하면서 그곳에서 세상 보는 관점을 말하는 사람 중에 목수정 만한 작가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그가 쓴 책은 대부분 읽었다. 이라는 도발적인 책 이후 나도 모르게 조금씩 그의 글에 중독이 되었나 보다. 작정하고 읽은 건 아닌데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읽다보니 이리 되었다. 그이 글은 정체성이 확실해서 좋다. 빙빙 돌리지 않고 자기 관점을 확실히 말한다. 정치인이었다면 다쳐도 여러 번 다쳤을 것이다. 청치인이든 작가든 말은 면피할 구멍이 있지만 글은 한번 뱉으면 빠져 나갈 구멍이 없다. 활자로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목수정은 자유인이어서 가능하다. 스스로도 자유인을 자처하지만 ..

네줄 冊 2017.01.27

이 외로운 사람들아 - 강명관

이 양반 책을 몇 권 읽었던가. 침묵의 공장, 조선의 뒷골목 풍경, 책과 지식의 역사,, 묵직한 주제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든 잘 쓴 문장 때문에 술술 읽히는 매력이 있다. 이번 책도 고전에서 인용한 대목을 현대와 접목해 사회 현상을 짚은 책이다. 저자의 사유가 담긴 산문이라 해도 되겠다. 산문이면서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는 예전의 책 침묵의 공장에서 대학이 취업준비 학원으로 전락한 현실을 탄식하며 사람 우선인 학문을 탐구하는 대학을 갈망했다. 그 책에서 강명관 선생의 생각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이런 학자가 바로 우리 사회의 큰 자산이자 거울이다. 강명관 선생은 한문학자이기 전에 책으로 깨우침을 주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 양반 글을 읽다보면 천상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신을..

네줄 冊 2017.01.13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 성선경 시집

이 시집을 읽고나서야 성선경 시인을 내가 좋아하는 시인 명단에 올린다. 그동안 여러 시집을 냈고 나도 서른 살의 박봉씨를 시작으로 몇 권의 시집을 읽었다. 이전에 읽었던 시집에서는 뚜렷하게 인상을 남긴 시가 별로 없었다. 그가 서정성 짙은 심오한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이 시집만을 놓고 보면 일단 시가 쉽다. 그래서 누구나 공감한다. 이 말은 시가 가볍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가벼운 시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건 아니다. 어려운 말을 쉽게 해야 소통이 되듯 그의 시가 그렇다. 시집을 낸 곳도 부산의 생소한 출판사다. 작가들이 메이저 출판사를 선호하기에 라는 출판사는 처음 듣는다. 제목도 아주 잘 지었다. 아마도 시인의 현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귀에 쏙 들어오는 제목이다. 성선경 시인은..

네줄 冊 2016.12.21

잃어 가는 것들에 대하여 - 윌리엄 이안 밀러

요즘 나이 들어감에 대한 책들을 집중해서 읽는 편이다. 그런 중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신간 소식을 접할 때마다 호기심이 가는 책을 목록에 올린다. 갈수록 읽어야 할 책 목록은 계속 쌓이고 책 읽는 속도는 느려서 못 본 책만 자꾸 늘고 있다. 예전에는 조바심이 생기기도 했으나 오십대에 접어들어 조바심은 없어졌다. 그러나 책에 대한 욕심은 여전하다. 소유하겠다는 것보다 더 늦기 전에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도 마음만 있지 천성이 게을러서 늘 미루기만 한다. 이 책은 실제 저자가 65세가 넘어 썼다. 나름대로 나이듬에 대한 생각을 잘 정리해서 술술 읽힌다. 그러나 부제가 다소 거슬린다. 이라는 문구다. 과연 나이 들어 만나게 되는 행운들이 있을까. 그것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입에 발린 ..

네줄 冊 2016.10.16

라면을 끓이며 - 김훈

김훈의 책은 대부분 읽는다. 여전히 독자를 배신하지 않는 빼어난 문장에 홀딱 빠졌다. 특히 부제로 달로 나온 라는 문구가 마음을 확 잡아당긴다. 제목만 번지르하고 내용은 빈약한 책과는 클라스가 다르다. 소설은 허구를 다루지만 수필은 실제 경험을 옮긴다. 그래서 작가의 글솜씨가 그대로 드러난다. 김훈이 바라보는 세상은 슬프면서 희망적이다. 그의 깊이있는 사색과 세상을 관조하는 힘이 문장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읽어 내려가다 기막힌 표현을 만나면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곱씹어 보는 대목도 여럿이다. 좋은 책을 읽은 뒤가 쓸쓸하면서 긍정적이다. 아무리 진수성찬도 식욕이 있어야 넘길 수 있는 것, 환자의 영약식은 음식이 아니라 사료다. 건강한 사람은 혓바닥부터 후두엽까지 제대로 기능이 발휘되어야 한다. 라면이..

네줄 冊 201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