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 성선경 시집

마루안 2016. 12. 21. 21:53

 

 

 

이 시집을 읽고나서야 성선경 시인을 내가 좋아하는 시인 명단에 올린다. 그동안 여러 시집을 냈고 나도 서른 살의 박봉씨를 시작으로 몇 권의 시집을 읽었다. 이전에 읽었던 시집에서는 뚜렷하게 인상을 남긴 시가 별로 없었다.

그가 서정성 짙은 심오한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이 시집만을 놓고 보면 일단 시가 쉽다. 그래서 누구나 공감한다. 이 말은 시가 가볍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가벼운 시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건 아니다. 어려운 말을 쉽게 해야 소통이 되듯 그의 시가 그렇다.

시집을 낸 곳도 부산의 생소한 출판사다. 작가들이 메이저 출판사를 선호하기에 <산지니>라는 출판사는 처음 듣는다. 제목도 아주 잘 지었다. 아마도 시인의 현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귀에 쏙 들어오는 제목이다.

성선경 시인은 고등학교 교사 생활 30년을 올 초에 마감했다. 명예퇴직이다. 이 시집이 그 퇴직을 기념하는 헌정시집이라 해도 되겠다. 주변으로 밀려나는 중년의 애잔함에 공감을 깊이 느낀다. 내가 시인보다는 조금 어리지만 시인과 비슷한 시대를 공감한다.

일찍 사회에 나온 나는 몇 년 선배를 친구처럼 상대하며 살았다. 또래들과의 대화는 시시하게 느꼈다. 그래서일까. 특히 명태 씨 시리즈와 4부에 실린 해학적인 시는 완전 내 이야기처럼 읽었다. 어쩌면 그렇게 능청스럽게 장삼이사의 인생을 실감나게 표현했을까.

갈수록 시가 어렵고 안 읽히는 시대다. 시인은 많은데 읽을 만한 시는 없다. 그리고 그 이유를 독자에게서 찾는다. 몇 번을 읽어야 조금 이해가 되는 예술성 짙은 시도 필요하다. 그러나 요즘 그렇게 시를 목숨 걸고 단물이 빠지도록 읽어줄 독자가 몇이나 될까.

아는 것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느낀다는 말이 있다. 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예술이 심오함만을 데리고 문으로 들어오면 독자는 창문을 통해 달아나 버린다. 패러디를 빌린 나의 표현이다. 특히 빡빡한 삶에 지친 중년들에게 이 시집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