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라면을 끓이며 - 김훈

마루안 2016. 10. 10. 08:23

 

 

 

김훈의 책은 대부분 읽는다. 여전히 독자를 배신하지 않는 빼어난 문장에 홀딱 빠졌다. 특히 부제로 달로 나온 <먹고 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라는 문구가 마음을 확 잡아당긴다. 제목만 번지르하고 내용은 빈약한 책과는 클라스가 다르다.

소설은 허구를 다루지만 수필은 실제 경험을 옮긴다. 그래서 작가의 글솜씨가 그대로 드러난다. 김훈이 바라보는 세상은 슬프면서 희망적이다. 그의 깊이있는 사색과 세상을 관조하는 힘이 문장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읽어 내려가다 기막힌 표현을 만나면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곱씹어 보는 대목도 여럿이다.

좋은 책을 읽은 뒤가 쓸쓸하면서 긍정적이다. 아무리 진수성찬도 식욕이 있어야 넘길 수 있는 것, 환자의 영약식은 음식이 아니라 사료다. 건강한 사람은 혓바닥부터 후두엽까지 제대로 기능이 발휘되어야 한다. 라면이면 어떤가. 라면 한 그릇도 맛있게 먹으면 그것이 행복이다. 아래는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어서 책에 실린 일부를 옮긴다. 

*행복에 대한 추억은 별것 없다. 다만 나날들이 무사하기를 빈다. 무사한 날들이 쌓여 행복이 되든지 불행이 되든지. 그저 하루하루가 별 탈 없기를 바란다. 순하게 세월이 흘러서 또 그렇게 순하게 세월이 끝나기를 바란다.

죽을 생각 하면 아직은 두렵다. 죽으면 우리들의 사랑이나 열정도 모두 소멸하는 것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삶은 살아 있는 동안만의 삶일 뿐이다. 죽어서 소멸하는 사랑과 열정이 어째서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을 들볶아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사랑과 열정으로 더불어 하루하루가 무사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이 아니지만, 그래도 복 받은 일이다.

사람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본 일이 있었다. 연기가 빠져나가듯이 생명은 가뭇없이 빠져나갔다. 생명은 본시 연기나 바람 같은 기체가 아니었을까. 생명이 빠져나간 육신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고 죽어가는 육신의 눈을 떠서 마지막 이승을 바라보더니 눈을 감았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이승의 마지막 풍경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아직 살아 있는 나는 죽어가는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마지막 망막의 기능으로 아직 살아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마지막 망막에 비친 살아 있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죽어가는 그와 마찬가지로 한줌의 공기나 바람은 아니었을까.  *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