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감자꽃 - 김지연 사진 산문

얼마전에 사진전에 갔다 와서 읽게 된 책이다. 전시회도 좋았지만 나는 며칠 동안 이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십에 접어 들어서 시작한 사진가의 길이 칠십에 완성된 것이라 해도 되겠다. 오랫동안 향기를 품은 들꽃 같은 사진집에 들어있는 글 또한 너무 시적이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사진도 시적이다. 수많은 사전전을 봤지만 이만큼 시적인 사진을 본 적이 있던가. 그의 사진전이래야 첫 전시회였던 정미소와 이번 감자꽃뿐이지만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세상엔 널려 있는 시인 만큼이나 사진가도 널려 있다. 주말이면 값비싼 카메라에 유명메이커 아웃도어를 걸치고 떼로 몰려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일출이나 무슨 안개 자욱한 저수지 등이 그들이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출사지다. 기계에 의존한 사..

네줄 冊 2017.12.18

나는 타인이다 - 윤향기

시에게 영화가 전하는 당신 이야기, 부제목에 눈길이 먼저 간 책이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 속도감 있게 읽힌다. 책은 안 읽힌다는데 출판 되는 도서는 늘어나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수준 이하의 내용으로 독자를 현혹하는 책들이 넘쳐난다. 제목에 낚였다가 막상 책을 들추면 허접스런 내용과 함량 미달의 문장으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출판도 일종의 사업이기에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독자들이 책을 고르는 혜안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이 설렜다. 시인이 쓴 영화 감상 후기라 할 수 있다. 무슨 거창한 영화 이론이나 문예 사조를 동원하지 않고 시인의 잔잔한 감상기가 촉촉하게 스며든다. 20편이 넘는 영화를 언급했는데 두 편을 제외하고 전부 내가 본 영화다. 시인의 영화 보는 방향이 나와 비슷하다는 증거..

네줄 冊 2017.12.17

아흔 즈음에 - 김열규

20대 이후 아주 오랫만에 김열규 선생의 책을 읽었다. 많은 것이 불만 투성이였던 20대에 몇몇 친구와 독서 모임을 가졌다. 몇 년 지나 금방 흐지부지 흩어지고 말았지만 한동안 아주 치열하게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 깊이는 없고 목소리만 컸던 토론이 대부분이었지만 열정은 있었다. 각자 돌아가면서 한 사람이 책 한 권을 추천하면 그 책을 읽고 느낌을 말하는 거였다. 그때 읽었던 책이 김열규 선생님의 책이었다. 제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국학에 관한 책이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김열규 선생님이 저자였다. 지나온 내 인생이 그렇듯이 럭비공처럼 갈피를 못잡아서 책 읽기 또한 꾸준한 일관성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숙자 직전의 바닥까지 내려간 상황에서 나를 지탱해준 것은 책이었다. 활자가 나에겐 ..

네줄 冊 2017.12.15

낭만의 소멸 - 박민영

헌책방을 순례할 때가 있다. 딱히 어떤 책을 사겠다는 생각보다 그저 옛집에 들르듯 가는 것이다. 헌책방에 가면 무조건 사고 보는 시절이 있었다. 맛있는 음식 두고 참지 못하는 것처럼 들어가면 빈손으로 나오질 못했다. 집에 쌓여가는 책들, 읽으려고 샀지만 절반 이상은 못 읽은 책이다. 혹자는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도 있지만 꽂아 두기 위해 산다고,, 목차만 훑어봐도 읽은 것으로 친다고,, 나도 그때 절반쯤은 수긍했다. 지금은 아니다. 몇 해 전에 미니멀리즘을 실천한다고 주변을 정리했다. 큰 방 사면을 가득 채운 책을 가장 먼저 정리했다. 담배 끊기 힘든 것처럼 책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실천 하고 나니 집안의 다른 것까지 하나씩 버리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한지를 알았다. 버리기 전에 책장을 쭉 ..

네줄 冊 2017.12.14

만들어진 간첩 - 김학민

초등학교 다닐 적에 매일 아침 학교 운동장에 모여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들었다. 그 훈시에 간첩 신고를 해야 한다면서 간첩 찾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간첩을 신고해 잡게 되면 엄청난 포상금이 주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내 주변에 간첩을 봤다는 사람도 포상금을 받았다는 사람도 없었다. 가수 김추자가 노래를 부르면서 추는 춤이 간첩들에게 보내는 수신호라는 소문만이 춥고 삭막했던 우리들 사이에 파다했다. 당시 나는 그 소문을 믿었다. 그 시절 매주 친구집에 놀러가서 흑백 테레비에 나오는 113 수사본부를 열심히 봤다. 토요일 밤에 방송된 걸로 기억을 한다. 그 때 간첩들은 나쁘기가 인간도 아니었다. 이 책은 없는 간첩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다.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간첩 활동으로 당국의 조사를 받던 중 자신이 ..

네줄 冊 2017.12.10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

서경식 선생의 서양미술기행 책을 뒤늦게 읽었다. 10년 전쯤인가 을 읽고 나서 미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책도 여전히 다른 책과 구별되는 미술 도서다. 마치 그를 따라 미술관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그의 오랜 미술관 기행은 일본의 신문이나 방송에 정기적으로 실린다. 그런 경험을 책으로 냈는데 이번 미술기행 책이 3 권째다. 보기 좋고 예쁜 미술보다 인간의 아픔을 표현한 미술에 유독 관심을 두는 사람답게 이 책에서 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림도 참 좋다. 오토 딕스 또한 정권에 저항하고 시대와의 불화를 겪으며 일생을 보낸다. 서경식 선생의 책은 읽을 때마다 지성인의 표상을 본다. 그의 미술기행을 따라 가다 보니 왜 그가 이 시대의 진정한 지성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좋은 책을 ..

네줄 冊 2017.12.10

대한민국 병원 사용설명서 - 강주성

살면서 가능하면 가지 말아야 할 곳이 몇 군데 있다. 경찰서, 법원, 교도소, 병원 등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곳을 갈 수밖에 없다. 병이 났는데 병원 무시하고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 책은 병원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의사나 병원을 불신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병원도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기에 무료봉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환자를 정당한 소비자로 인식하고 공정한 거래 관계가 되었으면 한다. 병원과 환자의 관계처럼 종속적인 것이 있을까. 아무리 부당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 환자다. 병원들은 동업자 정신으로 똘똘 뭉쳐 담합이 잘 되는 곳이라 병원을 선택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부당함에 반발해 병원을 옮기고 싶어도 그 병원이..

네줄 冊 2017.12.08

돈의 인문학 - 김찬호

오래전에 읽고 싶었던 책을 이제야 읽었다. 책도 인연이란 게 있어서 때를 놓치면 다시 잡기가 쉽지 않다. 읽어야 할 도서목록에 벌써부터 올려 놓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뒤로 밀리다 보니 몇 년이 흘렀다. 김찬호 교수의 책은 대체로 읽는 편이다. 그의 책은 쉽게 쓰기 때문인지 읽으면서 금방 이해가 되면서 술술 읽히는 매력이 있다. 가령 세상에 공짜란 없다고 말하면서 숫자의 함정에 대한 부분에서 경제용어인 분식회계를 언급한다. 많이 들어봤으나 딱부러지게 설명을 못 하는 용어인데 분식은 분을 바르고 장식한다는 뜻이라는 말로 이 경제용어를 바로 이해시킨다. 고로 분식회계란 예쁘게 꾸며 속이는 회계장부인 것이다. 맞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공짜라는 단어 뒤에는 뒷통수를 치는 속임수가 들어있거나 나중 더 큰 이익을 ..

네줄 冊 2017.11.30

슬픔을 말리다 - 박승민 시집

박승민은 첫 시집을 유심히 읽었던 시인이라 가슴 한 켠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때 슬픔을 참 맑게 걸러낼 줄 아는 시인이구나 했다. 잊고 있던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읽었다. 슬픔을 잘 걸러내는 시인답게 제목도 다. 이 시인과 딱 어울리는 제목이다. 영화든 책이든 한 번 꽂히면 그 사람의 작품을 뿌리까지 파헤치며 읽는 편이다. 박승민 시인도 첫 시집에서 너무 인상적이어서 두 번째 시집을 기대하고 있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좋은 작품이 많이 실렸다. 빠지는 시가 없을 만큼 고른 시편이다. 라는 제목에서 말리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말리는(乾燥) 것일 수도 있겠고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말리는(制止)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시집을 읽고 슬픔에 젖은 시인은 말리고(乾燥), 슬픔을 만..

네줄 冊 2017.11.30

말하지 않는 한국사 - 최성락

역사는 내가 살던 시대가 아니면 천상 기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내가 사는 현재도 하나의 사건을 달리 해석하거나 평가하는데 먼 옛날에야 오죽 하겠는가. 광주항생이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선 민중들의 항거인데 누구는 북한군이 내려와 일으킨 폭동사건이라 하지 않던가. 그 외에 유서대필 사건이나 수많은 간첩 조작 사건 등 일어난 당시와 현재 사실이 완전히 달라진 역사적 사건이 부지기수다. 동학농민항쟁도 당시대에는 동학란이라 했다. 지금은 부정한 치세에 항거한 민중 혁명으로 인정 받고 있다. 물론 아직 동학농민전쟁, 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운동 등 확실하게 정리된 명칭이 없기는 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부르는 명칭 바뀐 역사적 사건이 많다. 단종 복위를 계획했던 사육신이 세조에게는 역적이었듯이 어느 쪽에서 보..

네줄 冊 2017.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