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할배의 탄생 - 최현숙

마루안 2017. 4. 4. 01:26

 

 

 

이 책은 두 노인의 인생을 말하고 있다. 초등학교 겨우 나온 저학력에다 평생 육체 노동으로 세상을 떠돌며 밥벌이를 한 육체 노동자 이야기다. 노인들이 직접 쓴 글이 아니라 노인이 구술한 것을 저자 최현숙이 구술을 다듬어 문장으로 옮긴 것이다.

이런 책은 저자에 먼저 관심이 간다. 책 날개에 실린 저자 소개는 이렇다. 사춘기와 함께 시작된 천형 같던 액취증은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갖게 해준 선물이었다. 아버지와 싸우며 모든 사회적 통념과 가치관에 의심을 품을 수 있었다. 나침반 없는 방황과 혼돈의 와중에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 결혼을 통해 가난으로 들어섰고, 예수와 충돌하며 가난을 선택했다. 여성과 사랑하며 더 큰 자유를 얻었다.

결혼과 출산 뒤 신앙적 고민 속에 1987년 천주교 사회운동을 시작으로 운동권이 됐다. 지금 주된 관심사는 중장년 여성과 노인이다. 1957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환갑을 한 해 앞둔 올해 초 원룸에서 독거 시작, 10대 후반의 꿈을 마침내 이루었다. 지은 책으로는 <천당허고 지옥이 그리 칭하가 날라나?>.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가 있다.

이토록 당당한 저자 소개가 있던가. 약력으로 쓴 자서전이라 해도 되겠다. 많은 작가들이 나이도 출생지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기장이 아닌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 책을 냈다면 기본적인 저자 소개는 해야 한다고 본다. 그걸 밝히기 껄끄러우면 책을 쓰지 말고 일기장에 써 놓고 혼자 읽어야 한다.

이 책은 제목도 저자도 내용도 인상적이다. 궁상 맞은 저자 소개부터 실패한 인생을 당당하게 내 놓은 것도 할배 탄생의 당담함이 묻어난다. 나는 이런 삶에서 궁기가 느껴지기보다 치열하게 살았다는 경외심을 느낀다. 어쩌면 자격 미달의 부모에게서 이들의 인생은 밑바닥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이 책의 주인공인 김용술, 이영식, 둘 다 칠십을 넘긴 노인이다. 지독히 가난했고 일찍 부모를 잃었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육체 노동으로 밥을 빌었다. 한 사람은 결혼을 했으나 이혼을 했고 한 사람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래서 한 사람은 <나는 잡초야, 어떤 구뎅이에 떨어져도 악착같이 다시 일어나> 했고 한 사람은 <나는 가난하고 마누라도 자식도 없어요>로 자신을 요약한다.

그들은 성욕을 달래기 위해 여자를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평생을 통해 반복된다. 그러면서 철칙은 지킨다. 싫다는 여자와는 절대 섹스를 하지 않고 여자에게는 얻어 먹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힘들게 번 작은 재산을 여자들에게 꼴랑 바친 경우가 많다. 때론 인생이 누군가의 호구가 되기도 하지 않던가.

평생을 떠돌며 산 탓에 오랜 기간 연락이 두절된 가족에 대한 회한과 미안함도 교차한다. 세 명의 여자에게서 열 명의 배다른 자식들 중 하나였던 소년이 늙어 지난 날의 가족을 돌아보다 흐느끼는 장면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한다.

잘 살아낸 이들의 인생이 쓸쓸하면서 씁쓸하다. 그럼에도 안도한다.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누가 이들의 인생을 실패했다 하는가. 내 인생이라고 이들보다 얼마나 나을까. 실패한 인생도 낭비한 인생도 한평생이다. 부동산 투기로 시장을 교란시키고 남의 기회를 박탈해 피눈물 나게 한 부자 인생보다 이들의 착한 삶이 훨씬 아름답다. 적어도 이들은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았으니까.

젊은층은 노인들을 복지나 누리는 틀딱충이라 혐오한다. 그럼에도 노인의 적은 노인이다. 가난한 사람들 역시 가난한 사람끼리 서로 미워하며 적대시한다. 여성의 가장 큰 적도 여성이고 성소수자도 장애인도 그들의 적은 같은 성소수자와 장애인이다.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늙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이에게 오냐 너도 함 늙어봐라 혀를 찰 게 아니라 같은 노인들끼리 서로 존중하고 아픔을 나눌 때 세상의 노인 인식도 변한다. 대부분 적은 자기 안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