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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종합병원 - 신재규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온 지구를 덮친 가운데 책도 그것에 편승해 온갖 의학 서적이 난무하고 있다. 정체 불명의 외국 도서를 베낀 것도 있고 듣도보도 못한 출판사에서 유사 도서를 출판해 틈새 시장을 노린다. 민주주의 유지에 깨시민의 연대가 필요하듯 좋은 책을 고를 줄 아는 깨독자의 안목이 중요하다. 주기적으로 들르는 대형서점을 돌다 보면 엄청난 도서량에 놀란다. 출판계가 불황이라는데 대체 누가 이런 책을 읽을까 싶을 정도로 출판량이 엄청나다. 질병 같은 의학계 도서 또한 근래 출판이 늘었다. 그 중에 이 책 이 눈길을 끈다. 이런 책일수록 저자가 중요하다. 특히 TV에 돈을 내면서까지 출연해 이름을 알린 뒤 각종 지식을 파는 약장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설픈 지식으로 대중을 현혹하고..

네줄 冊 2021.04.30

마스크와 보낸 한철 - 이상국

마스크와 보낸 한철 - 이상국 -코로나 19를 견디며 살다 살다 그깟 마스크를 사려고 약국 앞에 줄을 설 줄이야 그래도 고맙다 신통한 부적처럼 우환을 막아줘서 고맙고 속이 다 내비치는 안면을 가려줘서 고맙고 세수를 안 해도 사람들이 모르니까 더 고맙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육이오 동란까지 겪고 또 겪고 살다 살다 마스크 대란이 올 줄이야. 저들은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는 벌레 군단 국경도 인종도 가리지 않는 인류 침공에 어벤저스 슈퍼히어로들도 속수무책인데 귓바퀴가 없으면 걸 데도 없는 저 손바닥만 한 천 조각이 지구를 구할 줄이야. 모든 화는 입으로 들어온다기에 쓸데없는 말 안 하고 나를 아끼고 남을 존중하며 마스크와 한철 보내고 나니 아무래도 내가 좀 커진 것 같다. 나라도 이전의 나라는 아닌 것 같다..

한줄 詩 2021.04.30

어둠의 원본 - 김대호

어둠의 원본 - 김대호 어둠이 빛나는 한낮을 지나 어둠의 원본이 드러나는 밤이 온다 한낮에는 온갖 빛나는 것들 때문에 어둠이 훼손되었다 그 훼손된 한낮에 더듬거리며 일을 하고 더듬거리며 당신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아무래도 당신의 눈빛은 밤과 잘 어울린다 밤에 만나는 당신의 허연 목덜미는 참 매혹적이다 나는 당신의 목덜미에 가볍게 키스한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당신은 빛에 찢어진 목청을 보수하느라고 가글을 한다 모든 영업이 끝난 이 밤에 밤의 속살을 얻기 위해 고요한 영업을 시작한다 아무것도 빛나지 않기에 당신의 음영이 뚜렷하다 사람이여 사랑이여 이 밤이 나의 최초라는 것을 이 밤이 나의 우화라는 것을 통속적인 것을 지나 아주 진지한 통속의 새벽을 기다리고 있음을 *시집/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한줄 詩 2021.04.30

마리아 - 울면서 후회하네

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러나 저녁 8시 뉴스는 빼 놓지 않고 보고 본방 놓치면 나중 유튜브로 꼭 본다. 예전에는 손석희 앵커의 JTBC 뉴스가 고정이었으나 요즘은 MBC 뉴스 데스크로 옮겼다. 그 외 가끔 스포츠 중계 정도 보는 것이 TV 시청의 전부다. 코로나로 바깥 출입을 자제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어도 나의 TV 멀리 하기는 마찬가지다. TV 시청은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기에 굳이 보는 걸 말릴 이유는 없다. 내 경험 상 TV를 가까이 하면 재미에 비해 너무 많은 걸 잃기 때문에 멀리할 따름이다. 누군가는 TV 예능 프로가 세상 사는 낙일 수 있고 누구는 게임하는 게 젤 재밌고 누구는 화투가 시간 보내기에 딱이다. 또 누군가는 밤새 야동을 보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도 할 것이다. 나..

두줄 音 2021.04.29

대못이 박힌 자리 - 곽재구

대못이 박힌 자리 - 곽재구 사내가 망치로 대못을 박았다 못은 제 온몸을 나무 깊숙이 투입하였으므로 나무와 못은 서로 행복하였다 세월이 흘러 못은 붉게 물들어 바스러지고 나무의 몸에 빈 구멍 하나가 남았다 늙은 사내가 빈 구멍에 망치로 새 못을 박았다 나무는 제 몸 안에 남은 붉은 녹 몇개를 떨구고는 고요히 구멍과 함께 부셔졌다 *시집/ 꽃으로 엮은 방패/ 창비 화진포 - 곽재구 소금에 절인 고등어 두마리가 갈라진 배를 마주 대고 이팝나무꽃 핀 하늘을 바라보네 장돌림 오십년 늙은 생선 장수는 북관 바닷가 마을이 그리워 죽은 생선의 눈에 임자도 소금 북북 문지르다가 뭉개진 손톱 까만 손등으로 눈두덩을 비비네 하얀 모래의 살들 맨발로 함께 연을 날리던 누이야 해당화 피어 말없이 좋은 날 파도 소리 엄마 젖 ..

한줄 詩 2021.04.29

생의 반 - 백인덕

생의 반 - 백인덕 ​ 최선을 다해 소진했지만 그런 적이 없었네. 세상 모서리 기어이 작은 유리조각이라도 찾아내 반짝이는 종말의 햇빛처럼 지금은 지금, 진자리에 돋는 싹도 최초의 문신처럼 자기 종말을 반사하며 빛나는데 얼굴을 닦았던 젖은 휴지로 책등을 문지르자 부스스 일어서는 못 자국들 의지는 살과 뼈의 결과 또는 허공에 결박하려는 마른 숨결 머리칼처럼 쉬 빠지는 페이지들을 검은 표정으로 굳게 움켜쥔 시흥 외진 인쇄소 절단기의 선명한 이빨 자국 최선을 다해 비틀거렸지만 빙그르 제자리, 마른 그림자만 짙어졌던 결코, 그런 적이 없었네. *시집/ 북극권의 어두운 밤/ 문학의전당 여기와 지금 - 백인덕 ​ 슬그머니 왼팔을 드네 목성이 막 그쪽을 지나갔다는 막연한 느낌 때문이네 흔들려도 중심은 없네 사실 죽음은..

한줄 詩 2021.04.29

초록에 잠들다 - 우남정

초록에 잠들다 - 우남정 꽃이 들판을 온통 봄으로 물들이고 간 뒤 먼 산 뻐꾸기 울음 아슴아슴 들려온다 아직도 갈대숲에는 빈 대궁들이 서걱거린다 꽃과 씨앗 다 떠나보내고, 그들은 왜 머리채 휘어잡는 바람과 맞서 긴 겨울을 건너왔을까 취한 아비들이 정거장에서 막차를 기다리듯 휘청거리는 허리를 곧추세우며 넘어질 듯 일어서고 있는가 쭈그리고 앉아 그 어둑한 밑동을 들여다본다 젖은 발가락 끝에 송곳니처럼 솟은 두어 뼘의 어린 초록이 보인다 저 어린것들이 제 어미를 먹어치우고 있었던 것일까 낮과 밤을 넘나들며 초록이 초록이 번진다 무엇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저 해묵은 손짓은 눈물 번득이는 칼날 가슴 언저리까지 차올라 차라리 그 초록에 찔려 죽고 싶다는 뜻일까 그예 한 세대를 넘겨주는 것일까 가녀린 쭉정이들의 장엄한..

한줄 詩 2021.04.28

불편한 잠 - 송문희

불편한 잠 - 송문희 뿌리가 뽑혀 떠내려온 몸들 음지에 구겨져 있다 빌딩숲은 야멸차다 햇빛을 끊어버리고 찬바람만 떠먹인다 어떤 나무들은 목에 이름을 걸고 이름을 찍는 순간 회전문이 열린다 지하도로 몰린 풀들은 이름마저 잊어버린 잡초인가 혹여 한곳에 오래 버티면 뿌리내릴 수 있을까 무료 급식에 기대 그 자리에 다시 눕는다 눈총을 덮어쓴 까만 얼굴은 체면을 까먹고 느릿느릿 근육을 줄이고 있다 박스로 구들을 깔고 신문지로 낮잠을 덮었다 지나가는 바람들은 멈춰 서서 무명을 딛고 일어선 가수의 넘치는 햇살을 읽느라 웅크린 잠을 펄럭거린다 불편에 길들여진 노숙의 잠은 금 하나 가지 않는다 *시집/ 고흐의 마을/ 달아실 흔들리는 봄 - 송문희 툴툴거리는 용달차 뒤칸 솜사탕 기계에 기댄 채 단잠에 빠진 여자 신호등이 ..

한줄 詩 2021.04.28

울릉도 오딧세이 - 전경수

나는 울릉도를 세 번 다녀왔다. 파릇파릇해서 청춘이라 했던가.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1986년에 처음 갔던 울릉도의 추억을 어찌 잊을 것인가. 지금이야 쾌속선이 있지만 그때는 포항에서 가는 여객선이 유일했다. 뱃시간만 네다섯 시간 걸렸을 것이다 민박촌 아주머니들이 뱃시간에 맟춰 마중을 나왔다. 일종의 호객행위다. "우리집으로 가입시더." 목소리 작고 제일 얌전한 아주머니를 따라 갔다. 금방이라는 말과 달리 한참을 가서야 도착한 경사진 마을 중턱이다. 덕분에 멀리 포구가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좋았다. 그때는 여행길에 코펠 버너 챙겨 가서 민박집에서 밥을 해 먹어야 했다. 이틀을 묵는 동안 내가 식사 준비를 하면 생선 조림이나 몇 가지 반찬을 갖다 줬던 기억이 난다. 나리봉도 가고 성인봉도 오르고 새벽부터 돌..

네줄 冊 2021.04.27

몰꼬을 트다 - 강영환

몰꼬을 트다 - 강영환 이녘 산과 저녘 들판을 적시던 눈물난 홍수가 물러나자 불어났던 강물도 빠진 뒤 갈대 꺾인 강안에는 북녘에서 떠내려 온 흰고무신 한 짝 체증 든 산하에 엎드려 누웠다 한 짝이래서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고무신을 끌어 올려 눈두렁에 뉘어 놓고 임진강 젊은 농부는 지나치는 길에 슬쩍 발을 맞춰 본다 아직도 생생한 고무신 주인공은 무사한 걸까 어쩌다가 떠내려 보내게 되었을까 주인도 농사일 하는 무지렁일까 넘나드는 백로에게 신겨서라도 돌려 줄 방법이 없을까 남은 짝 마저 강물에 떠내려 보내 준다면 외짝 고무신 짝 찾는 날 막힌 물꼬를 시원하게 터서 저녘 산과 이녘 들판 적시는 눈물 홍수라도 함께 만들까보다 *시집/ 숲속의 어부/ 책펴냄열린시 늘상 비애 - 강영환 복사빛깔 고운 두 볼에 주려고..

한줄 詩 2021.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