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귀가 - 허진석
꿈속에서는
조금 더 멀리 여행하며
조금 더
가난하다
오래전 여행 책자에 나온
호수와 가게가
사라지고 없다
돌아오는 기차가 끊겼거나
환승 택시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집에 가는 버스는 늘 붐비고
낯선 사람 가득하다
오래전에 죽은 친구가
어린 얼굴로 나타나 손을 흔든다
운전수는 아는 길로 가지 않는다
골목은 변했고 아무도 없다
망각은 통증이다, 주방에서 보글보글
기억이 끓어넘친다
집 전체가 앓는 이 저녁
식구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시집/ 아픈 곳이 모두 기억난다/ 파란출판
중년 2 - 허진석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그날 마지막 버스가 떠났다
물 고인 종점
내 몫의 짐을 지고 달려간 그곳
밤이 깊었고
흘러간 사나이들은
뱀을 사냥하는 곰과
오래전에 먹은 우럭회 얘기를 하며
늙어 가고 있었다
나는 큰길로 달려 나가
먼저 떠난 버스를 찾아본다고
잘 알지만
기억할 수 없는
코발트색 버스의 뒤창은 어두웠다고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시인의 말
양철로 접은 날개를 달고
모르는 곳을 날아다니다가
엔진이 아파 내려왔다
왼쪽 젖꼭지에 해 박은
나사못 하나가 튀어나왔다
맞는 게 없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등피 닦던 날 - 이형권 (0) | 2021.05.10 |
---|---|
나지막이 부드럽게 - 김태완 (0) | 2021.05.10 |
아침이라는 영정사진 - 천수호 (0) | 2021.05.05 |
구석에서 울다 - 박인식 (0) | 2021.05.05 |
사람론 - 김형로 (0) | 2021.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