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중년의 귀가 - 허진석

마루안 2021. 5. 10. 19:19

 

 

중년의 귀가 - 허진석

 

 

꿈속에서는

조금 더 멀리 여행하며

조금 더

가난하다

 

오래전 여행 책자에 나온

호수와 가게가

사라지고 없다

돌아오는 기차가 끊겼거나

 

환승 택시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집에 가는 버스는 늘 붐비고

낯선 사람 가득하다

 

오래전에 죽은 친구가

어린 얼굴로 나타나 손을 흔든다

 

운전수는 아는 길로 가지 않는다

골목은 변했고 아무도 없다

 

망각은 통증이다, 주방에서 보글보글

기억이 끓어넘친다

집 전체가 앓는 이 저녁

식구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시집/ 아픈 곳이 모두 기억난다/ 파란출판

 

 

 

 

 

 

중년 2 - 허진석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그날 마지막 버스가 떠났다

물 고인 종점

내 몫의 짐을 지고 달려간 그곳

밤이 깊었고

흘러간 사나이들은

뱀을 사냥하는 곰과

오래전에 먹은 우럭회 얘기를 하며

늙어 가고 있었다

 

나는 큰길로 달려 나가

먼저 떠난 버스를 찾아본다고

잘 알지만

기억할 수 없는

코발트색 버스의 뒤창은 어두웠다고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시인의 말

 

양철로 접은 날개를 달고

모르는 곳을 날아다니다가

엔진이 아파 내려왔다

 

왼쪽 젖꼭지에 해 박은

나사못 하나가 튀어나왔다

 

맞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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