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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적 아버지의 시대 - 김점용

외설적 아버지의 시대 - 김점용 죽은 아버지를 꺼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어떤 중년 사내가 끼어들어 같이 찍는데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폼만 잡았다 아버지와 나는 꼭 쉰 살 차이라 중간을 채우는 게 더 자연스럽지만 부재중인 사진사를 대신하여 타이머에 맞춰 찰칵 눌러도 중년의 사내는 찍히지 않았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어두컴컴한 무덤을 배경으로 어깨에 손도 얹고 치즈 흉내도 내면서 필름 한 롤을 다 쓸 때까지 이래저래 포즈를 취했는데 이번에도 중년은 한 컷도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당황한 쪽은 오히려 나여서 중년의 사내가 사진관 주인인지 배다른 형인지 잘못 꺼낸 젊은 시절의 아버지인지 알 수가 없어 언제 나갔는지 그가 사라진 뒤에도 아버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

한줄 詩 2013.08.17

1박 3일 지리산 종주 2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커피까지 달게 마신다. 차비를 갖춰 8시쯤 세석 산장을 출발했다. 지난 밤에 내가 누운 자리 주변은 전부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시작으로 말문이 열리고 산 이야기가 펼쳐졌다. 산꾼들의 등산 경력이 화려하다. 나도 지리산이라면 꽤 여러 번 왔기에 웬만한 코스는 알고 있지만 이들의 머리 속에 든 등산 코스는 거미줄처럼 세세하다. 산장을 출발해서 뒤돌아 보니 세석 산장이 보인다. 잘 있거라. 산장아, 내 또 언제 와서 너의 무릎에 고단한 다리를 올릴 수 있을까. 비는 갰지만 날씨는 여전히 찌푸둥하다. 풍경은 자세히 볼 수 없어도 이런 날이 산을 걷기에는 좋다. 등산을 하다 잠시 쉴 때면 걸어 온 길을 돌아보는 습관이 있다. 이미 지나친 길은 내 길이 아니건만,, 장..

일곱 步 2013.05.20

1박 3일 지리산 종주

지리산 종주를 1박 3일로 다녀왔다. 예전에는 지리산을 세 번 가면 한 번은 종주였는데 근래 들어 뜸해졌다. 성삼재에서 새벽에 출발해 노고단에 도착하니 해가 뜨고 있다. 해는 매일 뜨지만 일년에 해뜨는 모습을 보는 날이 며칠이나 될까. 이렇게 산에 와야 해 뜨는 것을 볼 수 있고 산에서 보는 일출은 다른 맛이 있다. 일출을 본 후 노고단 대피소에 내려와 아침을 해결했다. 달달한 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 출발했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능선길에 서니 지리산의 넉넉함이 새삼 밀려온다. 임걸령 지나 노루목에서 반야봉 쪽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종주 등산객들은 반야봉을 들르지 않는다. 반야봉 가는 능선에 철쭉이 지천으로 피었다. 막바지 봄이 산색을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다. 반야봉에 앉아 한동안 능선을 내려다 보..

일곱 步 2013.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