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적 아버지의 시대 - 김점용 죽은 아버지를 꺼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어떤 중년 사내가 끼어들어 같이 찍는데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폼만 잡았다 아버지와 나는 꼭 쉰 살 차이라 중간을 채우는 게 더 자연스럽지만 부재중인 사진사를 대신하여 타이머에 맞춰 찰칵 눌러도 중년의 사내는 찍히지 않았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어두컴컴한 무덤을 배경으로 어깨에 손도 얹고 치즈 흉내도 내면서 필름 한 롤을 다 쓸 때까지 이래저래 포즈를 취했는데 이번에도 중년은 한 컷도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당황한 쪽은 오히려 나여서 중년의 사내가 사진관 주인인지 배다른 형인지 잘못 꺼낸 젊은 시절의 아버지인지 알 수가 없어 언제 나갔는지 그가 사라진 뒤에도 아버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