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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옷과 땔감 - 김점용

주검옷과 땔감 - 김점용 -꿈 68 저승사자가 셋 왔다 가슴이 뜨끔하다 검은 망사 두건을 쓰고 곱게 화장을 했다 두루마기는 희고 검은 스트라이프 무늬를 넣었는데 어머니의 소복을 짜 넣은 것이다 내가 태연한 척 우리는 해당 사항 없으니 저 아래 마을로 가라고 하자 그들이 사라진다 난 산 중턱에서 땔감으로 쓸 나무를 마련한다 나뭇가지에 옷이 주렁주렁 걸려서 무척 무겁다 동네 어른 한 분이 수의를 맞추었다며 어머니는 부러워하셨다 살아서 스스로 수검옷을 짓다니, 장롱 속에 수의를 넣어두고 홀로 지낼 어머니를 생각하니 살아 있는 무덤이 따로 없다 사람 하나 보내는 데 너무 많은 것을 준비한다 수의에 상여에 무덤에 잔치에 제사까지, 난 마침표 하나라도 남기기 싫다 땔감이나 충분히 마련해서 조상부터 내 뼛가루까지 다..

한줄 詩 2016.03.20

떠나 가는 배 - 정태춘

정태춘 - 떠나 가는 배 저기 떠나 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 곳이 어드메뇨 강남 길로 해남 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물결 너머로 어둠 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 가는 배 너를 두고 간다는 아픈 다짐도 없이 남기고 가져 갈 것 없는 저 무욕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언제 우리 다시 만날까 꾸밈 없이 꾸밈 없이 홀로 떠나 가는 배 바람 소리 파도 소리 어둠에 젖어서 밀려올 뿐

두줄 音 2016.03.18

법정 스님의 의자 - 임성구

법정 스님의 책을 즐겨 읽던 시절이 있었다. 정갈하고 담백한 글에서 당신의 성품을 엿볼 수 있었다. 스님이 떠난 지도 다섯 해가 흘렀다. 기억하는 것에는 동기가 필요한데 이 영화를 보며 스님을 생각했다. 입적하시기 전 세상에 내놓은 말빚을 거둬들이길 원해 당신이 쓴 모든 책을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스님이 머물던 불일암에 갔을 때 봤던 의자가 생각난다. 스님은 모든 것을 털고 가니 자신을 잊으라 했지만 남은 사람들은 기억을 한다. 절판된 책의 향기는 물론 당신이 머물렀던 공간에서 각자의 추억을 되새김 한다. 때론 영화가 이렇게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도 하는가 보다. 은은히 우러나는 녹차향 같은 영화다.

세줄 映 2016.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