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주검옷과 땔감 - 김점용

마루안 2016. 3. 20. 21:08

 

 

주검옷과 땔감 - 김점용
-꿈 68


저승사자가 셋 왔다 가슴이 뜨끔하다 검은 망사 두건을 쓰고 곱게 화장을 했다 두루마기는 희고 검은 스트라이프 무늬를 넣었는데 어머니의 소복을 짜 넣은 것이다 내가 태연한 척 우리는 해당 사항 없으니 저 아래 마을로 가라고 하자 그들이 사라진다 난 산 중턱에서 땔감으로 쓸 나무를 마련한다 나뭇가지에 옷이 주렁주렁 걸려서 무척 무겁다

동네 어른 한 분이 수의를 맞추었다며 어머니는 부러워하셨다 살아서 스스로 수검옷을 짓다니, 장롱 속에 수의를 넣어두고 홀로 지낼 어머니를 생각하니 살아 있는 무덤이 따로 없다

사람 하나 보내는 데 너무 많은 것을 준비한다 수의에 상여에 무덤에 잔치에 제사까지, 난 마침표 하나라도 남기기 싫다 땔감이나 충분히 마련해서 조상부터 내 뼛가루까지 다 태우고 가고 싶다

 

 

*시집, 오늘 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 문학과지성사

 

 

 

 

 


소가 어머니를 죽이다 - 김점용
-꿈 14


외출했다 돌아오니 외양간의 소가 외로워 보인다 배가 고픈 줄 알고 풀을 주었더니 먹지 않는다 펌프질로 물을 받아 세수를 한다 소가 안채 기둥에 매여 있다 얼굴에 비누칠을 하다 말고 왜 집에 아무도 없냐고 소에게 묻는다 소는 대답하지 않는다 뭔가 숨기는 게 분명하다 내가 괜찮다며 말하라고 하자 소는 자기가 어머니를 죽였다며 운다 문득 안심이 된다 하지만 나는 슬퍼해야 하므로 소 머리를 안고 함께 운다 소 얼굴에 비누 거품이 가득하다 내가 어디에 묻었냐고 묻자 부엌 앞 펌프 밑에 묻었단다 그리고 또 운다

하나뿐인 어머니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어디서든 자발적으로 망가지고 싶었다
내 안에 칼을 품고 있었구나
비누로 씻어 속죄할 양이면
나보다 더 간절하게
지나간 삶 전부를 되돌리고 싶으실
아버지의 세 번째 아내,
어머니

 

 

 

 

# 김점용 시인은 1965년 경남 통영 출생으로 서울시립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오늘 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 <메롱메롱 은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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