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1 - 진은영 청춘 1 - 진은영 소금 그릇에서 나왔으나 짠맛을 알지 못했다 절여진 생선도 조려놓은 과일도 아니었다 누구의 입맛에도 맞지 않았고 서성거렸다, 꽃이 지는 시간을 빗방울과 빗방울 사이를 가랑비에 젖은 자들은 옷을 벗어두고 떠났다 사이만을 돌아다녔으므로 나는 젖지 않았다 서성거.. 한줄 詩 2016.08.05
시집을 태우며 - 원무현 시집을 태우며 - 원무현 내 심장이라고 건네주었던 내 심장이라며 가져갔던 시집이여, 귀 기울이면 흐르는 강물의 도도한 소리가 들리고 손 뻗치면 식물이 꽃을 피우기 위해 펌프질하는 소리가 만져진다고 했던 그렇게 자부했던 너를 회수해 불태운다 법에도 없는 법외의 형벌 너무한 것.. 한줄 詩 2016.08.04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 기형도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 기형도 가라, 어느덧 황혼이다 살아 있음도 살아 있지 않음도 이제는 용서할 때 구름이여, 지우다 만 어느 창백한 생애여 서럽지 않구나 어차피 우린 잠시 늦게 타다 푸시시 꺼질 몇 점 노을이었다 이제는 남은 햇빛 두어 폭마저 밤의 굵은 타래에 참혹히 감겨들.. 한줄 詩 2016.08.04
조화에도 향기가 있다 - 김병심 조화에도 향기가 있다 - 김병심 그러니까 짝퉁, 시대에는 향기가 있어 진짜에게 묻지 마, 따진다고 물러서지 않는 복제, 좌판에서 화려하게 컴백한 짝퉁의 궁둥이를 만져봐 여, 여봐라 눈요기하는 꼴린 지갑, 지금부터 접수 중 까이것, 나의 향기를 묻히지 나를 만진 너는 이제부터 내 것, .. 한줄 詩 2016.08.04
종점의 추억 - 나호열 종점의 추억 - 나호열 가끔은 종점을 막장으로 읽기도 하지만 나에게 종점은 밖으로 미는 문이었다 자정 가까이 쿨럭거리며 기침 토하듯 취객을 내려놓을 때 끝내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귀잠 들지 못하고 움추려 서서 질긴 어둠을 씹으며 새벽을 기다리는 버스는 늘 즐거운 꿈을 .. 한줄 詩 2016.08.03
식은 풍경 - 이영광 식은 풍경 - 이영광 눈 그치다 그러나, 길 끊기다 젖은 소포와 몇 장의 연하장, 연락하지 말자는 연락이 왔다 폭설이 세상을 아득히 데려가버릴 때까지 나는 불타올랐으나, 결국 식었던 거다 늙은 바람은 한계를 눈 단장하여 아파트 담벽 아홉시 방향의 어둡고 깊고 아름다운 숲으로 세워.. 한줄 詩 2016.08.03
울음 밥그릇 - 김왕노 울음 밥그릇 - 김왕노 저 주름살 가득한 독거노인은 올음 밥그릇이다. 징용당해 전쟁터로 떠돌다가 전사한 남편이 저 할머니를 일찍이 울음 밥그릇으로 빚었다. 수절에 긴긴 세월과 유복자로 낳은 아들을 돌보았으나 한때 울음 밥그릇은 윤기가 흐르고 단단하며 자태가 좋았다. 저 울음 .. 한줄 詩 2016.08.03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 박노해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 박노해 시간은 모든 것을 쓸어가는 비바람 젊은 미인의 살결도 젊은 열정의 가슴도 무자비하게 쓸어내리는 심판자이지만 시간은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거장의 손길 하늘은 자신이 특별히 사랑하는 자를 시련의 시간을 통해 단련시키듯 시간을 견뎌낸 것들은.. 한줄 詩 2016.08.03
아버지의 발자국 - 우대식 아버지의 발자국 - 우대식 꾹꾹 눈 쌓인 산소를 밟으며 무슨 대답을 해야 합니까 무엇을 물어도 답할 수 없습니다 어린 날 만종 驛 어느메 즈음에서 당신과 함께 걷던 먼 들판을 기억합니다 그 들판에 눈도 내리고 저녁놀도 지곤 하였습니다 오늘 당신과 나의 거래(去來)는 무엇입니까 무.. 한줄 詩 2016.08.03
그 많은 밥의 비유 - 김선우 그 많은 밥의 비유 - 김선우 밥상 앞에서 내가 아, 입을 벌린 순간에 내 몸속이 여전히 깜깜할지 어떨지 희부연 미명이라도 깊은 어딘가를 비춰줄지 어떨지 아, 입을 벌리는 순간 췌장 부근 어디거나 난소 어디께 광속으로 몇억 년을 달려 막 내게 닿은 듯한 그런 빛이 구불텅한 창자의 구.. 한줄 詩 2016.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