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아버지의 발자국 - 우대식

마루안 2016. 8. 3. 04:24



아버지의 발자국 - 우대식



꾹꾹 눈 쌓인 산소를 밟으며
무슨 대답을 해야 합니까
무엇을 물어도 답할 수 없습니다
어린 날 만종 驛 어느메 즈음에서
당신과 함께 걷던 먼 들판을 기억합니다
그 들판에 눈도 내리고 저녁놀도 지곤 하였습니다
오늘 당신과 나의 거래(去來)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가고 무엇이 왔습니까
아마도 번뇌 같은 것이겠지요
그물과 같이 던져진 그것
눈이 시린 하늘을
새가 날아오를 때
당신과 나의 거래는 원만히 성사된 것이지요
이제 다시 만종 驛 즈음에서 서성입니다
기사 식당에 들어가 혼자 밥을 먹고
다시 길을 걷습니다
풀리지 않는 답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아버지의 발자국이 흐려졌습니다



*시집, 설산 국경, 중앙북스








아버지의 쌀 - 우대식



아버지가 쌀을 씻는다
쌀 속에 검은 쌀벌레 바구미가 떴다
어미 잃은 것들은 저렇듯 죽음에 가깝다
맑은 물에 몇 번이고 씻다 보면
쌀뜨물도 맑아진다
석유곤로 위에서 냄비가 부르르 부르르 떨고 나면
흰 쌀밥이 된다
아버지는 밥을 푼다
꾹꾹 눌러 도시락을 싼다
빛나는 밥 알갱이를 보며 나는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죽어도 잊지는 않으리
털이 숭숭 난 손으로 씻던
그,
하, 얀,






# 아버지를 향한 시인의 그리움이 눈물겹다. 내게는 이런 정서가 없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젖먹이 때 돌아가신 사진에 박힌 당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예전에 아버지에게 매를 맞은 후 아버지를 욕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그도 지금쯤 아버지를 그리워할까. 누구에게나 아버지는 멀고도 가까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