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조화에도 향기가 있다 - 김병심

마루안 2016. 8. 4. 06:04



조화에도 향기가 있다 - 김병심



그러니까 짝퉁, 시대에는 향기가 있어
진짜에게 묻지 마, 따진다고 물러서지 않는 복제,
좌판에서 화려하게 컴백한 짝퉁의 궁둥이를 만져봐
여, 여봐라 눈요기하는 꼴린 지갑, 지금부터 접수 중
까이것, 나의 향기를 묻히지
나를 만진 너는 이제부터 내 것, 복제는 접수 중
진짜들은 너무 고고해, 비싸, 소심해, 희소성, 남의 것
까이것, 세상은 짝퉁이었어 너도 가짜잖아 나만 몰랐잖아
어차피 우리의 향기는 공통분모
지금 나는 변신 중, 여자로 얍! 얍! 얍!



*시집, <근친주의, 나비학파>, 도서출판 각








결혼식 가는 길 - 김병심



잠수함을 타고 깊이 숨고 싶은 바다
결혼이라는 말은 뭍에 있는 신기루 같아
멀미한다 비행기도 연착한 밤
인어 떼라도 쫓고 싶지만


는개 낀 하늘은 숨길 수 없는 날개를 뭍 쪽으로 기울인다
쇄골 언저리에 보석으로 장식한 면사포 속의 얼굴을 보여준다
스튜어디스는 흑백사진의 어머니처럼 웃기만 한다
신부가 없는 결혼은 결혼이 아닌가요
내가 헝클어진 눈물을 흘리자 어머니는 웃음을 거두고
차갑게 나를 안는다 어둠이 펼쳐진 창공은 멈칫
노래를 부르던 지느러미를 자른다


바닷속으로 헤엄친 인어 떼의 물거품이 뭍으로 몰려올 때
비행기는 식장 근처 활주로에 미끄러진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내가 면사포를 쓰고 목 언지리에 예물보석을 두를 텐데


오늘은 나의 결혼
거기 내 인생을 거꾸로 돌리려는 사뿐한 걸음
하얀 웨딩드레스의 신부가 두 다리로 걸어온다


오늘 밤이 지나면 나는 신부가 아니다
결혼이란 입덧이 끝나면
남편으로 살아야 하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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