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울음 밥그릇 - 김왕노

마루안 2016. 8. 3. 19:04



울음 밥그릇 - 김왕노



저 주름살 가득한 독거노인은 올음 밥그릇이다.
징용당해 전쟁터로 떠돌다가 전사한 남편이
저 할머니를 일찍이 울음 밥그릇으로 빚었다.
수절에 긴긴 세월과 유복자로 낳은 아들을 돌보았으나
한때 울음 밥그릇은 윤기가 흐르고 단단하며 자태가 좋았다.
저 울음 밥그릇 자식의 사업 실패로 금이 가고 이가 깨졌으나
그래도 이 가을밤 밥그릇 가득 울음이 찰랑인다.
벌레 소리와 함께 철철철 넘쳐 난 울음이 강물을 이룬다.
저 울음 밥그릇에 발 한번 담근 사람도 함께 운다.
독거노인이란 울음 밥그릇에 가득 넘치는 것은
비우고 비워도 다 비우지 못할 할머니의 비린 인생사
복지 제도로도 달래거나 그치게 하지 못한 질긴 울음
가도가도 긴긴 달 푸른 밤 울음 또한 길고 깊다.



*시집, 그리운 파란만장, 천년의시작








몸을 건너가는 것 - 김왕노



월출이 아지매 궤도차 같은 세월이 지나가도 여전히 아리따운 몸매를 가졌다. 월출이 아지매의 아저씨가 먼 공사판에서 보상 하나 없이 죽음만 앞세우고 돌아왔으나 월출이 아지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논두렁 밭두렁 같은 세월에 자식을 풋콩처럼 심어 잘 키웠다. 논 깊은 곳에는 미꾸라지 통발을 놓고 돈 된다면 무엇이든 챙겨서 알부자 된 월출이 아지매, 읍내 홀아비 몇 건들바람처럼 기웃거렸지만 턱도 없는 일


강물을 건너 꽃 시절이 가듯 월출이 아지매 아저씨의 젊은 날이 자기 몸을 건너갔으면 되었지 그 어떤 놈이 제 몸을 건너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월출이 아지매


지금도 허리 낭창하고 고운 눈매 월출이 아지매, 콩밭가 참죽나무에 앉은 뻐꾸기 울음소리에 자꾸 먼 곳을 본다.






# 김왕노 시인은 1957년 경북 포항 출생으로 공주교육대학, 아주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슬픔도 진화한다>, <말달리자 아버지>,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그리운 파란만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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