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 - 김수우 미끄럽다 찢어진다 평지에 서보지 못한 발목들이 엎어진다 내가 버린 쓰레기들이 수평선을 넘어간다 동서남북에 산불이다 몇달씩 타오른다 미얀마 청년들은 암흑과 싸우는 중이다 피가 터진다 거북이 배 속에 구겨진 패트병이 가득하다 빙하가 허물어진다 폭우와 폭염과 돌풍과 가뭄, 저 순서가 없는 불화들 고압선마다 걸린 무수한 갈고랑이들 창문을 깨뜨리던 무수한 돋보기 현미경들 우리 안의 가파른 사선은 읽지 못했다 짐승의 내장을 닮은 천민 자본은 비탈을 오르려 발악이다 평민 희망은 비탈을 잡고 바동거린다 원래 비탈이었던 가난은 잘 미끄러진다 물길을 낸다 흔쾌하다 하루가 된다 허공에 놓인 저 사다리 한참 더 내려가야 한다 궤도가 멈추는데 어떤 수태를 기억하는가 야생 쑥 무더기로 쏟아지는 봄, 봄이 미끄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