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에 경배한다 - 김일태
주름졌다는 것은
기운 빠졌다는 게 아니다
나를 접었다는 것이다
나를 내어주면서 너를 편안히 받아들일
힘이 쌓였다는 것이다
오냐오냐 한마디로
투정 철부지 짓 다 받아주시던 어머니의 포근함은
주름의 힘이었다
뒷산 소나무가 바람을 견뎌낸 것
다 주름의 힘이었다
주름을 만든다는 것은
나를 버려 너를 버는 일이다
하늘과 다투지 않는 요령으로 농투성이들이
논밭에 이랑과 고랑을 짓듯이
주름에 경배하라
*시집/ 주름의 힘/ 시선사
동지(冬至) 건너 동지(同志) - 김일태
동지쯤이었던가
밝음은 짧고 어둠은 까마득하던 그때
동지로 다가와서
내 안의 석등의 되어
삼동의 절망과 희망을 까무락 까무락
하, 서른일곱 번이나 달고 짜게 건너와서
다시 한번 맞이하는 삼동의 들머리
이제는 떨 일도 없는데
큰 목소리로 불러야 들릴 만치
사는 맛이 거세진 그대여
무뎌져 가고 있다는 것은
실은 서로 외롭다는 몸짓 아니겠는가
신이 등 쪽에 가려워도 손이 닿지 않는 곳 두었듯
사랑을 위해
제 마음으로 달랠 수 없는 빈 데를 두었다는 것
서로 마음 빌려야 메꿀 수 있는 데가 있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 아니겠는가
아직 팔베개가 부끄러워 손사래치는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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