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윤회 - 주영헌

마루안 2018. 2. 18. 19:32



윤회 - 주영헌



온몸에 가득 찬 슬픔은
눈물이 아니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흐르는 것은 잠시 멈춰 있거나 어딘가로 다시 흘러가 처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을 찾아가는 것들
내 어머니가 첫아이를 잃었듯 나도 첫아이를 잃었다
슬픔도 윤회(輪廻)하는가


먼저 진 것들이 가는 곳은 어디인지
나는 누구의 슬픔이 되어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 것인지
타자처럼 진지한 고민은
어느 지점에다 부려놓아야 하는지
흐르는 것들의 輪廻란
그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것이어서
내 몸을 흐르는 슬픔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른다


슬픔은 말라가는 것이 아니라 몸속에서
강처럼 타지로 흘러가고 있는 것뿐
한밤 뒤척이다
물소리 흘러넘치지 않게 이불을 고쳐 덮는데
제 달을 못 채운 어린 슬픔이 칭얼거리는 저쪽
그 보채는 슬픔은 누가 달래 줄 것인지


조용히 방문 열렸다.
다시 닫히는 윤회의 틈



*시집, 아이의 손톱을 깎아줄 때가 되었다, 문학의전당








상(喪) - 주영헌



친구의 부고 문자가 왔다
죽은지도 몰랐는데 벌써 내일이 발인이다
삶도 죽음도 성격이 있다고 말하던 조용한 친구
죽음도 조용하다


발인(發靷)이란
가슴에 걸어 먼 곳 보내주는 일
싫어도 억지로 앞장세워
그 뒤 따르는 일


있는 듯 없는 듯 뒤만 따라오던
이 친구,
이처럼 일가친척 많은 사람 뒤따르는 일 있었을까
혼자서 얼마만큼 멀리 갈 수 있을까
그와 함께할 사후(死後)란 것
생각해보지 않아서
어디쯤 다시 만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없다
친구 사이 쑥스러워 절 못할까 싶었는지
영정사진 밝게 웃고 있다
절하고 나서는데,
뒤통수가 뜨끈하다


절 잘 받았다고, 크게
웃는 것 같다





# 주영헌 시인은 1973년 충북 보은 출생으로 2009년 <시인동네>로 문단에 나왔다. <아이의 손톱을 깎아줄 때가 되었다>가 첫 시집이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틈새의 생 - 김추인  (0) 2018.02.18
낯선 곳에서, 낯선 - 김정수  (0) 2018.02.18
외로움에 대한 짧은 생각 - 허장무  (0) 2018.02.18
아직도 아궁이 불빛이 - 조길성  (0) 2018.02.18
밥심 - 김나영  (0) 2018.02.17